마중물/시인들 시

들판 / 오규원

김낙향 2008. 4. 28. 00:14

들판

                  오규원


관절염을 앓는
늙은 감나무 가지 사이로
엉큼한
서너 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드문드문 누워서
햇빛을 죄는 무덤에서
김해 김씨의 족보와
창세기 제1장 제 2절이
걸어나오고

먼지 속에 묻혀버린
발자국이
매일 풀밭에서 벌어지는
신의 음모에 참석차
기웃둥 기웃둥
가고 있다

길이 끝난 곳에
산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오, 시간이 외그루 나무처럼 서서
지나가는 사람의
모자를
차례로 벗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