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향 2008. 10. 13. 12:24

국화차

 

 

 

 친구가 놀러 와서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찻잔에 노란 국화 두 송이 띄웠다.

 따스한 김이 향긋하게 번지면서 국화꽃이 활짝 벙근다.

 잠시 기다리는 시간, 차분히 번지는 노란 꽃 색, 커피처럼 진하지도 장미 꽃차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름 가을임을 강조하는 듯한 강한 향기를 지녔다.

그 매력 있는 향기를 나는 즐기지는 않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 종종 마신다.

 

 저물녘 노을 한 가닥 머리에 이고 소나무 밑이나 상수리나무 밑에서 서성이듯. 차향 언저리에서 여물고 있는 가을을 이야기한다. 

 

 찻잔에 국화꽃이 얌전히 가라앉아 있다.

 국화차를 즐기지는 않지만 종종 마시는 이유는 진한 향기와 친해지려고. 물론 그것이 매력이라 친구는 즐긴다고 했다.

 한 모금 물고 입속에서 붐비는 향을 씹듯이 하다가 천천히 삼켰다. 친구는 두어 잔을 더 마셨지만 나는 한 잔이면 족하다.

 시중에서 파는 녹차도 국화차도 여러 잔 마시면 속이 쓰려서다. 

 

 오래된 기억 하나 떠오른다.

 내가 어릴 때는 농번기가 아니어도 누룩으로 술을 담가서 먹었다.

 아랫목에 놓아둔 항아리에서 술 익는 냄새와 소리가 새어 나올 때쯤 어머니는 노란 국화 한 다발을 술독에 넣었다.

 술 익는 소리마저 눌러놓고 가는 흰 버선발 스치는 소리와 풀 먹인 옥양목 앞치마 스치는 소리를 흘려놓고 총총히 나가던 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국화꽃을 미리 넣지 않고 술이 익는 소리가 날 때 넣는 것은 향이 강해서가 아닐까?

 국화꽃은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서 차로 마셔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차를 마실 때마다 반복하게 된다.

 

 빈 잔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탁자 위에 걸어놓은 노박덩굴에서 열매 하나가 또르르 잔 옆으로 구른다

 "어머나, 얘도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가 봐" 하고 친구가 깔깔 웃는다.

 

 

 

 

2005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