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당신이 오신다면/이분기
김낙향
2010. 1. 18. 23:58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당신이 오신다면/이분기
조금은 걸어오셔야 할 겁니다
나는 좁은 오솔길을 걸어 올라와야 할 곳에 살 테니까요
오시면서 망초꽃 엉겅퀴꽃 쉬엄쉬엄 보시며 오세요
늙은 나를 위해 싸리꽃 한 움큼 꺾어 오실 거예요,
당신이라면 당신이 문에 들어서면 엊도 본 듯 웃을 거예요
먼저 차 한 잔 들릴 게요 꺾어오신 싸리꽃 몇 잎 따서 띄워 드리겠어요
담 아래 꽃 피운 봉숭아 맨드라미에 눈길 주는 척하며
서로 안색을 살피겠죠 아마 짠할 겁니다,
그래도 짐짓 웃을 거예요
당신 좋아하시는 호박잎 쌈에 된장찌개 끓여 드릴 게요
그리곤 떡갈나무 숲으로 난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어요
애써 심었던 열무밭이 지난 비에 폭삭 내려앉았다는 둥
암탉들이 하루에 알을 다섯 개 낳는다는둥
그럼 당신은 낮게 웃고 나도 따라 웃고
주름진 얼굴에 파문이 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