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밑줄 / 신지혜

김낙향 2011. 9. 27. 23:50

밑줄

                               신지혜

 

 

바지랑대 높이

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제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들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여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