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시인의 시
김낙향
2013. 6. 15. 00:32
기차는 간다 /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樂貧 / 장석주
만질 수 있는 가난은 좋다
빗방울과 산사나무 얄매의 붉은 빛으로
빛은 가난,
불가피하게 당신이 가난이라면
내가 빈 쌀독의 안쪽에 고요히 들어앉은
공허라도 좋다
묵은 울음들은 쟁인 몸의 가난과
허리에 흉터가 되어버린 흉악한 가난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빠진 접시거나
굴러다니는 먼지 따위가 뭉쳐진 것,
우연들로 이룬 해질녘의 가난이라면
향후 오십 년 동안 굶어
나날이 뼛속 슬픔이 빠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가난이면,
당신이 가난 같은 으린 노래라면,
거리에서 / 이원
내 몸의 사방의 플러그가
빠져나와 있다
탯줄 같은 그 플러그를 매단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비린 공기가
플러그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몸 밖에 플러그를 덜렁거리며 걸어간다
셰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둥둥 더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