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빗방울의 수다 / 오영록

김낙향 2013. 12. 7. 11:04

소리의 귀를 닫아야 한다는 말에

끝 숨까지 참다 보니

살고 싶다는 간절한 애원이 들렸지

그때부터 이상한 귀가 열렸어

새벽바람을 모아 이슬을 만드는 풀잎 소리와

꽃망울 열리는 소리가 책장 넘어가 듯 들렸고

건기에는 허기진 뿌리의 갈증도 들렸지

어쩌다 여우비라도 오면 모두가 춤을 추었는데

그것은 목마름의 해소가 아니라

빗방울들의 수다에 흥이 났던 거지

비가 오는 모습은 마구 흩뿌리는 것 같아도

바람위에 앉아 눈처럼 정해진 길로 오고 있었지

원추형에 긴 꼬리가 있어

자궁을 향하는 홀씨처럼 흔들리고

그 꼬리가 바람을 날릴 때마다 소리가 났지

그것이 빗방울의 언어였던 거야

양철지붕에서 혹, 갈대밭에서

초원의 누 떼처럼

벌떼처럼 무리지어 다니며

수다를 떨지

싯싯싯 숫숫숫 사사사

 

ㅡ 詩 빗방울의 수다 / 오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