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바지락을 캐면서 / 강성백
김낙향
2014. 1. 8. 18:49
바지락을 캐면서 / 강성백
썰물이 빠져나간 천수만 갯벌 밭
농게 가족이 빈 구멍을 찾아 이사를 간다
바다는 하루도 거름 없이 이 길을 열어주었다
눅눅한 펄 밑에서 신음 한 번 내지 않는 조개들이
모래의 무늬를 입는 시간
나는 망망한 갯벌 위에쪼그리고 앉아 바지락을 캔다
무릎을 달래가며 넓고 깊은 갯벌을 엎는다
오랜 궁리로 오랜 물음으로 갯벌을 더듬어 습지濕地를
걸어온 맨발들
지난 해 시월 천 리 밖 물길에서 데려온 종패들이
혹한을 견디며 동글동글 영글었다
여섯달이 넘는 동안 거친 파도를 넘었을 것이다
구중의 두께로 고요가 슬는 시각에 달이 바다를 어루만지듯
더러는 혼자서 더러는 쑥대처럼 서로 엉겨 적요를 어루만졌을 것이다
수없이 밀려가고 수없이 밀려오는 물결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바지락조개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펄 묻은 입들을 연신 달막거린다
조용히, 낮은 생태계의 간절한 언어를 듣는다
저것들이, 하염없이 모래를 삼켜온 저것들이
쓰라린 손바닥을 달래줄 것이다
닳은 만큼 닳은 호미를 기억할 것이다
바다는 오늘도 천天의 생을 끌어안고
수유授乳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