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하지정맥류 / 이영혜

김낙향 2014. 4. 29. 17:57

 하지정맥류

 

 

 

     이영혜

 

 

  엄마의 다리에는 언제부턴가
  그녀가 걸어온 길이 검푸르게 돋아 올랐다

  나는 젊음을 빨아먹은
  시간의 거머리들이 이제 그녀를
  떠나려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경작할 수 없는
  칠순의 폐답 (廢畓)
  더 이상 위로 펌프질할 수 없는 물길은
  메말라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므로

  가늘어진 팔과 다리 창백한 살빛 아래
  드러난 엄마의 고지도 (古地圖)를 읽는다
  저 길을 밟아 밥을 빌어 오고
  수십 번 이삿짐을 옮겼을 것이다
  저 길에서 나의 길도 갈라져 나왔을 것이다
  이제 길은 옹이처럼 툭툭 불거지고
  점점 좁아지며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아마도 앙상한 저 생의 무늬는
  내가 다 갉아먹고 버린
  낙엽의 잎맥일지도 모른다
  파삭파삭 금세라도 부서져 내릴 듯한
  엄마의 길을 따라가며
  나는 잠시 내 발길을 되돌려 보는 것인데

  어느새 내가 밟아온 길들이
  내 팔뚝과 정강이에도 퍼렇게
  거미줄처럼 인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