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문학 당선 시
2014. 동아일보 / 오리시계 / 이서빈
김낙향
2014. 5. 20. 23:21
오리시계 | ||
이 서 빈 겨울, 오리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이면 다시 걸어 나온다. 연못으로 들어간 발자국과 나간 발자국으로 눈은 녹는다. 시침으로 웅덩이가 닫히고, 방수까지 되는 시간들. 오리는 손목이 없는 대신 뭉툭한 부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무심한 시보(時報)를 알린다. 시침과 분침이 걸어 나간 연못은 점점 얼어간다. 여름 지나 가을 가는 사이 흰 날짜 표지 건널목처럼 가지런하다. 시계 안엔 날짜 없고 시간만 있다. 반복하는 시차만 있다. 오리 날아간 날짜들, 어느 달은 28마리, 어느 달은 31마리 가끔 붉거나 푸른 자국도 있다. 무게가 덜 찬 몇 마리만 얼어있는 웅덩이를 보면 손목시계보다 벗어 놓고 간 시계가 더 많을 것 같다. 결빙된 시간을 깨면 수 세기 전 물속에 스며있던 오차들이 꽥꽥거리며 걸어 나올 것 같다. 웅크렸던 깃털을 털고 꽁꽁 얼다 풀리다 할 것 같다. 오늘밤 웅덩이는 캄캄하고 수억 광년 연대기를 기록한 저 별빛들이 가득 들어있는 하늘은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 시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