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학문적 판단의 오류 / 오영록
김낙향
2014. 6. 16. 22:33
학문적 판단의 오류
오영록
나무 이파리는 나무의 혀라고 배웠다
최소한 어제까지는
바람이나 햇빛을 찍어 먹거나 간을 보는 혀였다
나뭇잎이 팔랑이는 것은 허겁지겁 바람을 먹는 식탐으로 보였고
짙푸른 청록은 탐욕으로 보였다
혀였으니까!
나무 밑 그림자는 나무가 햇빛을 다 먹어버린 줄 알았다
때 이른 더위에 시들시들한 정자나무 잎을 보았다
나무의 혀가 맛난 음식 앞에
시들시들하다니
학문적 오류가 분명하다
제 몸이 시들시들 상하는데도
나무는 최대한 팔을 벌리고 잎을 펼쳐
뜨거운 햇빛을 속이 다 타도록 먹어 치우고 있다
그것이 햇빛 없는 그늘이었다
바람에 팔랑팔랑 움직였던 것이 아닌
날갯짓에 지친 허공의 수많은 날개들을 부르는
손짓이었다
그것을 나무의 혀라고 배웠던 학문적 치욕에
오줌을 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