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향 2014. 7. 3. 10:37

활 / 강정

 

 

 

시간이 이 세상 밖으로 구부러졌다
시여, 등을 굽혀라
 
고양이 새끼가 운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운다
 
급류를 삼킨 노을이
노을이 오빠가 되려고 운다
 
떠돌다 지친 다리가
다른 인간의 눈이 되려고
멀고 먼 샅으로 기어올라온다
 
빛이 어디 있는가
뒤집어진 어둠의 골상을 판독하려
한나절의 시름이 그다지 깊었다
 
못 나눈 정을 전염시키려
낮 동안 오줌보는 그토록 뾰로통했다
 
혈관에 흐르는 오래된 문자들을
고양이의 꿈이 딛고 지나는 이마 위에 처발라라
 
팔다리는 공기가 멈춘 나무
낭심 아래엔 죽은 별 무더기
 
구부러진 어깨를 펴라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겨라
 
발끝으로 세계의 끝을 밀어내고
이승 바깥에서 돌아 나오는
흰 새벽의 눈알을 찔러라
 
터져 나오는 세계의 명치에 구름을 띄워
이면이 없는 幻을 쳐라, 고요히 실명하라
 
실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