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무화과를 먹는 저녁 / 이성목

김낙향 2015. 11. 3. 15:54

무화과를 먹는 저녁  


    이성목


   지난 생에 나는 거기 없는 당신을 기다리는 벌을 받고 울다가 내 안으로 들어와 몸져누운 날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우두커니 서서 육신을 익혀가는 계절, 몽둥이에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엉덩이에 푸른 멍이 번지던 저녁이 있었습

니다.

  한 시절 몸을 탐하느라 나를 잊을 뻔도 했습니다. 아파하려고 꽃이 나에게 왔었다는 것, 위독은 병이 아니라 이별의 예

각에 숨어 피는 꽃이라는 것조차


  거기 없는 당신을 기다리다가 끝내 당신 속으로 들어간 마음이 진물처럼 흘러나와 어찌할 수 없을 때,
  바람은 스스로 지운 꽃냄새를 풍기며 선득하게 나를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없다면 어느 몸이 아프다고 저렇게 큰 잎을 피워내서 뒤척일까요.

  아무렇게나 태어난 아이들이 골목길로 꿀꺽꿀꺽 뛰어드는 환청, 꽃을 숨기느라 땅이 저물고 하늘이 붉어지는 것을 몰랐

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적 없는 꽃냄새가 당신도 없이, 입안에 가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