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꽃
영양 서석지에서
김낙향
2016. 7. 21. 22:29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1640년경에 정영방(鄭榮邦:1577~1650)이 축조하였다고 한다. 정영방은 1605년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나라가 어지러움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병자호란 후에 넷째아들인 제(悌)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먼저 서쪽 구릉 아래에 연못을 파서 서석지라 이름하고 양 옆에 정자를 세웠는데 오른쪽을 주일재(主一齋), 왼쪽을 경정(敬亭)이라 불렀다. 서석지라는 명칭은 이 연못 속에 있는 암반(岩盤)인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이 정자는 자손들이 수차 중수하였으나 사방 부연과 돌려친 난간 등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양 서석지 [英陽瑞石池] (두산백과)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서석지 입구 품이 큰 나무 그늘에 주차를 하고 둘러보니 신령스러운 은행나무가 보인다.
거기가 바로 서석지다. 400년이나 되었다는 은행나무는 나이답지 않게 푸른 옷을 무성하니 입고 있었다.
연못에는 연꽃이 무성하여 각각 이름 붙여진 바위는 다 볼 수가 없었고 소재 건물 주일재(主一齋)는 수리 중이었다.
조선 시대 민가 3대 연못은 담양 소쇄원. 해남 부용정과 영양 서석지이다.
정자에 올라 연꽃을 담으며 한참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