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시인들 시

돌을 웃기다 / 성영희

김낙향 2017. 7. 5. 23:27

          돌을 웃기다

 

 

  성영희 

 

 

  웃음 한번 웃는데 천년이 걸리는 얼굴을 보았어요 

  오래전 사람들은 저 웃음을 화난 얼굴로 기억 하겠지요 이끼를 아시나요 투박한 표정 하나 웃게 하려고 정 붙일 데 없는 돌을 기어오르는 녹음의 손가락들, 눈비바람볕 온갖 꽃들이 살랑거린다 한들 손가락 간지럼만 할까요 석상 발끝에서 생겨 몇백 년씩 기어오르는 이끼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돌이 웃을 생각을 다 했겠어요 그저 스쳐 지나는 것들에게 공을 돌리기엔 돌의 미소가 참 묵직하지 않나요 


  이쯤이면 저도 표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오래 지키면 부릅뜬 마음도 가물가물 사라지고 말까 봐 돌부처도 살살 발가락을 움직였을 거예요    

  내 얼굴에는 얼마의 시간이 살고 있는 것일까요 어느 간지럼을 출발해서 지금 막 도착해 있는 웃음 하나, 생각해보면 오래전에 잃어버린 나의 다른 이름은 아닐는지 돌아갈 궤도를 생각하면 표정 하나도 함부로 고쳐 짓지 말아야 해요


  양지바른 무덤 옆에 햇살 찡그리듯 웃고 있는 석상이 있어요 몸이 무덤인지 무덤이 몸인지 한자리에서 천 년, 자심(慈心)이 흘러 눈꼬리가 흐릿해요

 

2017 <서정시학>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