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파도가 읊조리는

김낙향 2017. 9. 12. 00:17

 

 

 

 

 

 파도가 읊조리는 

 

 

 

해변에서 하룻밤 묵고 싶습니다

몸을 뉘이면

바닷내음에 흠뻑 취하고 싶습니다

 

하룻밤 묵었다는 이유로

절벽에 오도카니 있는 해국 이웃이면

좋겠습니다

 

몽돌이나 조가비처럼 밀려다니다가

바다 염료에 물들어 상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루 몇 시간이라도 고해성사를 보겠습니다

 

바다가 밀어내는 뽀얀 언어의 음절을 읽다가

느닷없이 서글퍼지면

너무 쉽게 나를 세월에 넘겼다고

그래서 생이 늘 허기졌다고 성찰할 수 있는

여백이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두고간 회고록이 쉬 읽히는 방에서

나를 퇴고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무릎잠> 시집에서 / 김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