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용 감옥 / 함박눈 / 납작납작 / 김혜순 시인
일인용 감옥 / 김혜순
나는 물속에 들어가 혼자 있는 것 같아요
입을 벌린 목구멍에서 물방울 보글보글 올라가요
옷을 벗지도 않고 물속에 서면
옷에 핀 꽃에서 붉은 물감이 연기처럼 올라가요
헬리곱터에서 촬영한 구명조끼를 입고 대양에서 떠오른 한 사람
두꺼운 사전 속에서 멸종하는 한 음절의 단어처럼
눈감으면 나타나는 검은 바탕에 한 점 환한 벌레 한 마리
청진기로 듣는 구멍 막힌 갱도에서 마지막 남은 단 한 청년광부의 숨소리
누가 바다 가득 젤리를 쏟아 부어 굳힌 다음
몸을 하나 똑 떠내어 이 사거리 한 복판에 세워 두었나요?
나는 내 몸에 꾹 맞는 일인용 감옥에 살아요
나를 피해 내 몸속으로 도망간 소금기둥 같아요
함박눈 / 김혜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더 이상 우리 말은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순간,
폭설이 쏟아졌다
그것도 모르고
땅에 계신 우리는 하늘을 향해
아버지, 아 아 아버지
목청껏 간구했다
그러나 아무 목소리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달되지 않았다
폭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칼을 질렀다
그 다음 폭설이 우리와 우리 사이에
금을 그었다
두터운 잠과도 같은 금을 그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망우리, 마아앙우리
같이 가자 같이 가자
목청껏 외쳤지만
아무도 멈춰서지 않았다
자꾸만 두껍게 더 두껍게 흰 금이
가로세로 그어지고
서로가 사막처럼 머얼어졌다
하늘에 있던 나와 땅에 있던 나마저도
머얼어졌다, 꿈속처럼
납작납작
- 박수근 화법(畵法)의 위하여
드문드문 세상을 끊어내어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본다.
흰 하늘과 쭈그린 아낙네 둘이
벽 위에 납작하게 뻗어 있다.
가끔 심심하면
여편네와 아이들도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붙여 놓고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발바닥도 없이 서성서성.
입술도 없이 수근수근.
표정도 없이 슬그머니.
그렇게 웃고 나서
피도 눈물도 없이 바싹 마르기.
그리곤 드디어 납작해진
천지 만물을 한 줄에 꿰어 놓고
가이 없이 한없이 펄렁 펄렁.
하나님, 보시니 마땅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