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초경初經
김낙향
2018. 4. 23. 15:53
초경初經
초경을 아느냐 묻는다
그냥 붉다 했다
붉음을 어찌 이해하는가 묻는다
결핍의 완성이라 했다
의자가 앉으라 한다
연필 한 자루
백지 한 장 달랑 놓인 책상에
뭔가에 묶인 느낌이었다 두리번거리다 창가에 놓인 무화과를 집었다 열린 틈으로 초경 꽃물에 놀란 여자아이 무섬증을 견디며 점점 길어지는 허리와 목에 봄꽃을 시침하고 있다 두 겹 세 겹 시침하느라 길어진 봄 때문에 여름에 피워야 할 꽃을 시침 뒤에 접었다는 여자 곧장 가을로 지고 있다 피우지 못하고 골무 속으로 파고드는 꽃을 밀어내느라 쇠잔해진 손가락으로 이어지지 못한 계절을 대바늘로 뜨느라 안간힘이 농축된 망울망울의 수채
시가詩家 지하나 옥상에는 제 몸을 덜어내어 먹고 사는
야위어지는 생生이 있다
봄의 수틀이나 겨울의 창에 갇힌 마성적인 공간
깨지고 부서지면서
자꾸 무릎을 세우려는 시가 애처롭다
낙엽을, 꽃잎을, 웅크린 어둠을, 시인의 고택을 표절하면서
눈물겹게 흔들리는 바랜 꽃물이
- 소연 -
* 《시에티카》2016/ 상반기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