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같이 젖는다
김낙향
2018. 4. 23. 19:26
같이 젖는다
나뭇잎 한 무리가 지나고
두어 쌍이 또 지나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듯한 나뭇잎 하나
느린 획을 그어도 여여한 달
손바닥에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빛
는개 비였다가
안개 비였다가
백일홍도 젖고 과꽃도 젖는다
감나무 잎이
대추 나뭇잎이 같이 젖는다
귀뚜라미가 노래를 부른다
여섯 음절씩 떨면서 부른다
감나무 그림자 키만큼 연이어 부르다가
이따금 백일홍 꽃잎만큼 멈춘다
자꾸 반복한다
나방 한 마리 뼛속까지 환한 알전구에 붙어
음률에 기울이고
달은 감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기울이고
나는 팔 할의 달빛에 기울이고
같이 눈 맞췄다고
같이 밤을 보낸다고
- 소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