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문학 당선 시

2018 / 국제신문 (미륵을 묻다 / 김형수)

김낙향 2018. 7. 18. 23:13

미륵을 묻다  / 김형수




이천여 년 전에 방가지똥 씨앗이

스스로 발아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한 해밖에 못 사는 풀이 때를 기다린 것이다


사랑할 만한 세상이 오지 않아

이천 년 동안 눈 감은 태연함이라니

고작 일 년 살자고 이천 년을 깜깜 세상 잠잤다니


그런 일이 어찌 꽃만의 일이랴

우리도 한 쳔 년쯤 자다가

살고 싶은 세상이 왔을 때 눈 뜨면 어떨까


사람이 세상을 가려 올 수 없으니

땅에 엎드린 바랭이들 한 쳔 년쯤 작정하고

나무를 묻었다는 매향(埋香)의 기록


아, 어느 어진 왕이 천 녕을 도모했던가


침향이 되면 누구라도 꺼내 아름다운 향기로 살라고

백 년도 아닌 천 년을 걸어 나무를 묻었단다

그것은 사람이 땅에 심은 방가지똥이었다


한 해 지어 한 해 먹던 풀들이

천 년 후의 나무 씨를 뿌렸다는

우리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뿌듯한 매향에 관한 몇 줄의 글

읽고 또 읽고

노오란 꽃을 든 미륵이 눈에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