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문학 당선 시

2018 / 동아일보 신춘문예 (복도 / 변선우)

김낙향 2018. 7. 19. 23:13

복도 // 변선우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겅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 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서내려가는 걸까 드러낸 자신이 없고 드러낼 문장이 없다 나는 손이 있었다면 총을 쏘아보았을 것이다 꽝! 하는 소리와 살아나는 사람들 나는 기뻐할 수 있을까 그렇담 사람인 걸가 질투는 씹어 삼키는 걸까 살아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고래가 나를 건너간다 고래의 두 발은 내 아래에서 자유롭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으며 채식을 시작한 고래가 있다 저 긑에 과수원이 있다 고래는 풀밭에 매달려 나를 읽어내린다 나의 미래는 거기에 적혀 있을까 나의 몸이 다시 시작되고 잘려지고 이어지는데 과일들은 입을 지우지 않는다 고래의 고향이 싱싱해지는 신호인 걸가 멀어지는 장면에서 검정이 튀어 오른다 내가 저걸 건너간다면 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심사평


다충적 은유에 의한 소재의 확장

흥미로운 시적 사유의 전개 보여줘


'복도'는 소재를 다충적 은유에 의해 응란하게 확장함으로써 흥미로운 시적 사유의 전개를 보여줬다. 시가 감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과장으로 치닫거나 지적 퍼즐로 스스로를 축소시키는 현상이 빈번하게 목도되는 이즈음에 소재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힘과 다층적 사유를 전개하는 역량을 지닌 싱인에게 출발의 즐거움과 불쾌하지 않는 부담감을 함께 안겨주는 것이 제법 그럴듯한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김헤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조강석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