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따끈한 커피 한 잔 들고 앉았습니다.
처마 낙숫물 소리 들으며 군불 넣은 사랑방에서 썰렁한 늦가을 풍경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남편이 심심하다며 다가와 맹렬히 산에 다니던 날을 회상하네요.
말하자면 산에 아직 미쳐있거든요.
주말만 돌아오면 산으로 줄행랑을 치니. 성당은 토요 미사를 보았지요.
신부님 왈, "부득이한 사정 없이 토요 특전 미사는 무효입니다." 하지만
하루 당겨서라도 주님 뵙고 가면 맘이 편했으니까요.
낚시하는 사람이 산에 가는 사람을 보면 웃지요.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면서 뭣 때문에 땀 질질 흘리며 헐떡이고 가냐고.
산에 가는 사람은 낚시하는 사람 보면 이러죠.
종일 한곳에 앉아서 물만 멍하니 보다, 먹다가, 뭣 하는 거야? 지루하니.
나도 산 체질이었나 봅니다. 산에만 가면 좋았으니까요.
감칠맛 나도록 햇살에 투영된 속 맑은 나뭇잎이 너무 좋았어요.
힘은 들어도 내 속의 것들을 밀어내어 맑은 공기가 차오르는 느낌 아시나요?
걷다가 아무 데서나 시동 끄고 멈춰서도 경적 울리지 않는 곳.
마냥 앉아 있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곳,
잡다한 일상을 바람으로 깨끗이 샤워해도 경범죄에 걸리지 않는 곳.
무심히 고여 있는 짙은 안개에 멈칫거려도
그 안갯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영영 나오지 않는 그 길에 흡입되듯 따라가면
뽀얀 적막이 넘실거리는 운해를 만나면 절로 사슴처럼 선한 눈빛이 되곤 하였답니다.
조붓한 길을 걸어 올라 태가 고운 단풍 아래서 커피 한 잔 마시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지금은 산에 안 가도 사방이 풍경이고 산이네요.
귀촌 준비는 거의 되어가는 것 같아요.
방과 거실 시멘트 바닥 마르라고 보일러 열어놓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주절주절 쓰다가 커피가 다 식었고
귀촌한 여인의 마음을 더욱 축축하게 하는 낙숫물 소리 춥습니다.
2015/10.20 노트에서 옮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