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자리

병원에 입원하다

김낙향 2019. 9. 26. 10:25

 병원에 입원하다

 

 

 며칠 전부터 조촘조촘 다가온 감기가 추석날부터 극성스럽게 기침이 나온다.

 목이 붓고 목소리는 잠기고. 병원은 다 쉬고.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사서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추석 쇠고 자식들 떠난 집에 혼자 남겨진 친정어머니가 걱정된다. 더구나 두 마리 개와 닭 모이를 주려고 애쓰다가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싶어 비몽사몽 시골집으로 내려와 병원엘 가니 의사 왈 "당장 입원하세요" 다. 기관지염이 심하니, 폐렴 되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나.

 

 한 번도 밥을 해 본 적 없는 늙은 사위가 구십 넘은 장모 식사 준비는 어찌할 것이며 아픈 무릎 질질 끌고 사위 밥해주는 어머니 모습도 싫고 해서 추석에 못 내려온 둘째 동생 집으로 부랴부랴 어머니를 보내고 입원했다.

 병실은 화장실도 없는 2인실. 옷장과 사물함 소형 냉장고, 침대 둘 소박하게 한가한 분위기다. 5일 입원한 방값이 189,000원밖에 안 되니 부담은 없다. 옆 침대도 비웠으니 독방인 게다.

 예전에 맹장 수술하느라 병원에 입원하고, 아기 낳느라 입원한 후 감기로 3번째 병원 침대에 눕고 보니 나도 폐렴을 걱정할 나이가 되다니...

멍울처럼 씌워진 주부의 일 아내의 일을 내려놓고 별 영양가 없는 병원 밥이지만, 앉아서 또박또박 받아먹는 것도 괜찮다 싶다.

남이 해주는 밥 먹을 때가 행복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여자 중 하나가 나이기도 하다.

 

 태풍 소식에 혼자 있는 남편이 걱정되었지만, 태풍 타파는 봉화에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지나갔다.

 혼자 있어 본 적 없는 남편은 의외로 편하단다. 아들이 잔뜩 사준 햇반을 레인지에 돌려가며 김치찌개를 끓여서 잘 먹고 홀가분한 시간을 보낸다나. 하루라도 마누라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남자가 홀가분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남자도 때로는 혼자가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가 보다.

 

 병원 약은 독했다. 항생제가 몸속으로 퍼지자 가래도 숨찬 기침도 조금씩 잦아든다.

 천정을 보고 반듯하게 누우니 냉난방 기구 거무스레한 구멍에 끼인 까만 때가 보인다.

 돌아누웠다가 앉았다가 책을 뒤적이다가 분리수거 함께 해줄 남자를 아직 찾지 못하여 시집을 못 가고 있다는 사십 넘은 여인을 만났다.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 해 봤을까? 그런 요구를 각서 쓰듯이 쓰고 결혼해도 살다 보면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은 뻔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참 부러웠다.

 결혼생활은 약속이나 계약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사소한 희망 사항이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직장에 다니며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요즘 젊은 엄마들의 고충이 눈물겹다.

 나 역시 양면의 일을 감당하면서 시달리느라 마음과 영혼이 닳아 가난하여졌으니.

 삶이란 개개인의 팔자소관이라지만 여성들의 고뇌를 무력화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이름을 잊고 산 나를 포기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금방 카톡에 올라온 문인의 시가 좋아 적어본다.

 

   이런 날  / 전영란

 

 

  살아가는 동안

  오늘처럼 하늘이며 땅이 쩍쩍 갈라지도록

  소리치며 야단칠 때가

  어디 한두 번 이겠습니까

 

  이런 날은 하던 일 멈추고

  겸손히 앉아 생각에 잠겨보거나

  하늘도 한 번 쳐다보고

  가슴 저미며 두 손 모으고

  천둥으로 내려오는 말씀에

  귀 기울여 볼 일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고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름 물러가면

  하늘은 다시 맑아질 것이고

  밤이 깊었다면

  새벽은 그대의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