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자리

작은 축복이 아니다

김낙향 2019. 9. 27. 00:21

작은 축복이 아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으로 몸은 무기력해지고 지친 영혼은 가난해진다.

어떤 날은 소주나 맥주를 마시며 노가리를 질근질근 씹고 싶었지만, 마시지 못하는 술 겨우 한 모금 넘기곤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성냥팔이 소녀처럼 바라보았다.

 경제가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소문난 맛집을 한 번은 찾아갈 법도 했건만, 일주일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더라도 메이커 옷 한 벌은 사 입고, 영화나 뮤지컬도 보고 와서 통장 펑크 나면 또 벌어서 메꾸면 됐을 텐데, 그러질 못하고 살았다.

 좋은 말로 검소하기 소박하기를 속으로 외치며, 한편으로는 사치라는 핑계로 절약하며 살았다.

 그땐 그 소심함이 구질구질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지난날이 참으로 후지다.

 왜 그렇게 안달하고 살았는지. 그렇다고 집이 두 채가 된 것도 아닌데. 인생은 뒷북이라더니. 난 뒷북만 치며 살았을까?

 

 그런데도 날 보고 행복해 보인단다. 평안해 보인단다.

 친구이어도 서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사람들 사는 것 속속들이 들춰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한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근심 몇 개쯤 다 끼고 산다고.

 

 실은 요즘 나는 행복하여지려고 애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을,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뜨는 해를 맞이하고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일상을 칠십 년 넘게 누렸다는 것은 결코 작은 축복이 아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피천득 수필집 <인연>에 쓰인 "마음의 안정은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라는 글의 의미가 내겐 좀 생소하지만, 내가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한 번이라도 나 잘난 맛에 살아본 적 있는가!

 할 말이 없다. 생각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영광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할 것이다"라는 피천득 수필가의 글에 공감한다.

 그래 맞다. 살아오면서 남의 즐거움과 행복을 간접 경험하면서 얼마나 흐뭇하게 많이 웃었던가!

 

 지금까지는 뒷북치는 인생이었다면 남은 생은 뒷북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