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자리

미주알고주알.1

김낙향 2019. 9. 29. 00:05

미주알고주알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진 보물과 세목과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피천득 수필 <인연/80페이지>에 있는 글이다.

 

 살아온 세월을 추억하기에는 아름다운 사연보다 아픈 사연이나 사무치는 것들의 독성이 더 강해서 그런지 나의 친정어머니도 고단하고 서러웠던 시집살이와 대가 받지 못한 청춘을 넋두리처럼 한처럼 풀어낸다. 날짜를 짚어가며 논리적 개념으로 표현할 때면 구순이 넘은 총기가 놀랍기도 하지만 그 시대 여자의 인생에 공감하며 대화하다가도 같은 레퍼토리가 거듭될 때는 안타깝기도 하고 싫증도 난다. 좋았던 적은 없었을까? 행복한 순간은 다 지워져 버린 걸까?

 어찌 되었든 간에 생애를 추억하니까 나이는 제처놓고 단명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면한 것 같다.

 

 얼마 전 달콤한 여행을 회상하는 친구의 사랑이 참 부러웠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러브스토리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해 본 경험이 없는, 그냥 아주 평범하고 덤덤하게 같이 일하다가 무지개가 머리 위에 짠하고 떴는지, 어떤 바람에 꼼짝없이 엮였는지, 암튼 참 싱겁게 결혼사진을 찍고 살림을 합쳤다.

 이런 나의 말에 성격을 다 눈치챘을 것이다. 

 매사에 자신이 없어 소심하고, yes와 no를 두려워하는, 그래서 두리뭉실 긍정적인 보기에만 그럴듯한 게 나쁘지 않은 여자인 것을. 

 성격 형성은 부모의 DNA를 내려받지만,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되는 결과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서울 고모 집에서 자랐다.

 부잣집에서 잘 먹고 살 산다고 부모로부터 제외되어버린 나였다. 다 잘해 주어도 나는 스스로 외톨이었다.

 

 누가 나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정의를 묻는다면

 보리밥에 감자만 먹어도 부모와 친숙한 형제와 지내는 종일의 시간은 짧게 느껴질 것이고, 어린 나이에 어색한 동거는 두려움과 절로 생기는 눈치로 한 시간은 종일로 느껴지는 이게 바로 상대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윤오영 <염소>라는 수필을 읽다가 내 마음을 찡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 옮겨 적어 본다.

 " 주인이 저를 흥정하고 있는 동안은 주인 옆에 온순하게 충실히 기다리고 있듯, 그리고 길가에 버려져 있는 무청 시래기 옆에 세워두면 다투어 푸른 잎을 뜯어 먹듯, 그리고 다시 끌고 가면 먹던 것을 놓고 총총 따라가듯"

 

 이 글을 읽는 순간 어린 내가 염소란(운명은 다르지만)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린 나는, 아니요! 싫어요! 이런 말을 할 줄 몰랐었으니까. (지금은 yes와 no가 확실하지만)

 

 친정으로 내려온 이유도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아보고 싶어서다.

 근 일 년은 참 많이 다투었다. 서로를 너무 몰라서 다투면서 알아가면서.... 결론은 친정어머니와 사는 것도 청솔가지에 불을 지피는 것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어머니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가 칠십이 넘은 내 안에는 아직 사랑이 고픈 소녀가 웅크리고 있다.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농사일하느라 골몰해서 하얀 밥 배불리 먹고 있을 나까지 걱정할 여력이 없었을 테니까.

 과정은 어찌 되었건 지금은 지낼 만하다.

 

  마을회관에 갈 때면 어머니는 꼭 화장을 곱게 하다.

 손톱은 늘 투명한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어머니의 추억 속에 나는 없어도 한 인물 하던 새댁 적 모습과 스스로 내세우고 싶던 아름다운 삼십이 아직 머물고 있어 다행이다.

 화장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게을러터졌다고 핀잔을 하는 노모에게 머플러를 씌우고 찍은 얼굴 사진을 보면 소녀 같은 천진한 미소가 흐른다. 

 구순이어도 마음속에는 소녀가 산다.

 소녀는 봄이다. 

 몸은 겨울이어도 마음은 봄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