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자리

미주알고주알. 2

김낙향 2019. 10. 19. 20:56

 시골로 낙향하여 집 언저리에 있는 삼백 평 정도 묵혀있는 밭을 남편과 둘이서 원시적으로 갈아엎어 흙덩어리를 손으로 비벼 이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워 씨앗을 넣고 상추와 갖가지 모종을 심었다.

 

 먹거리가 한 뼘도 채 크기도 전에 밭골에는 잡초가 푸른 잎을 벌리며 땅따먹기하듯 영역을 넓혔다. 

 첫해는 가물었지만, 부지런히 물을 주며 상추와 고추를 따 먹는 재미에 풀 뽑는 일이 그리 힘든 줄 몰랐다.

 애호박과 오이, 가지를 따 먹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그런데 먹거리보다 풀은 왜 그리도 억척으로 자라고 달마다 다른 풀이 군대처럼 들이닥치는지.

 첫해가 지나고 두 해째도 뒷밭에 풀 뽑고 나면 앞 밭에 풀이 무성하고 돌아서면 어머니 마당, 또 나의 마당 잔디에, 길 나들목과 뒤란이며, 시골 생활이 매일매일 풀 뽑는 일로 시작하고 풀 뽑다 해가 저물었다.

 봄부터 시작된 풀 뽑기는 여름 땡볕에서도 멈출 수가 없다. 이른 아침이나 그늘지면 뽑으라 하지만 그늘지면 흡혈귀 모기떼가 달려들어 견딜 수가 없다.  

 

내 나이가 예순일곱에 귀향했는데 두 해가 지났을 때만 해도 기력이 왕성하여 거름도 내고 밭갈이도 그럭저럭 견뎠는데 삼 년이 지나고 일흔 고개를 넘으니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내 몸이 생각대로 따라주질 않았다. 그래서 마당과 길, 집 언저리에 제초제를 뿌리기 시작하였다. 한 삼 주 말끔하다가 또 풀이 돋기 시작하지만, 한결 수월하였다. 

 

 시골에 살면 생활비가 안 든다는 말이 참 우습다. 야채와 쌀( 도지 받으니까)은 안 사 먹어도 되지만 그 외는 도시와 똑같다.  

더구나 시골 생활은 수고한 만큼 대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 농사꾼이 아니라서 그런지)

한 해는 가물어서 그렇고, 한 해는 우박이 와서 그렇고, 한 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병이 나서 그렇고. 농사가 까다롭고 힘도 들지만, 경험이 없는 나와 남편은 난해한 과제물이었다.

 

 돈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 싫증이 난 어느 날 꽃 농원에 가서 하루 일당을 벌려고 신청했다. 이것 역시 낯선 일이라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땡볕에 수박밭에서 순 따는 여인들이며, 사과밭에서 종일 하늘을 보며 일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봤다. 

 오전 6시에 오라길래 갔더니 오후 6시까지 해야 하며 하우스 안 그늘에서 일하니 일당이 칠만 원이란다. (땡볕에서 열두시간 일하면 팔만 원)

 깜짝 놀란 나는 "하루 8시간 일하는 것 아니에요?" 했더니 시골 밭일은 열두 시간이란다. 그냥 돌아서기도 뭣해서 일하기로 했다. 결론은 죽는 줄 알았다. 여덟 시간까지는 할 만했는데 열 시간 견디기가 무리였고 열두 시간 견디느라 영혼이 빠져나가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꽃 자르는 일은 단순노동이었으나 종일 굽혔다 펴기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던지 허리가 아파서 생전 붙여보지도 않았던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점심 한 끼 주고 참으로 빵과 커피, 30분 휴식 이런 시간 다 빼도 열 시간 30분 노동이다. 노동 착취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지만, 시골 실정에는 이게 최선이라니 그리 이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일을 시키는 입장이나 일하는 입장 모두가 딱하다는 것은 내 생각이고, 여기 사람들은 다 관례로 받아들인다.

 

 벌어서 돈을 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나, 해 보지 않은 노동은 나에게는 무리였다. 

 농부들을 보면서 사 먹는 먹거리가 참으로 싸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하루였다.

 

 시골에 내려와 이달까지 꼭 사 년이다.

 사 년을 텃밭과 집 언저리 가꾸는 일에 내 체력을 매몰시켰다.

 이 비용을 한번 계산해 봐야겠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하는 노동이지만 식사 준비부터 빨래며 청소까지 보태면 일의 종류는 단순하지 않다. 그래도 일당을 6만 원으로 치자. (최저임금도 안된다)

 한 달을 25일 치면 일백오십만 원. 일 년이면 일천팔백만 원. 사 년이면 칠천이백만 원이다.

 이 나이에 어디에 살든 무슨 돈을 벌겠느냐고 하겠지만 시골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집에서 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 년 동안 회수 불가능한 비용, 경제학에 들이대 매몰된 비용이 칠천이백만 원이다.

 

 밤늦은 시간에 좌판을 두드리며 도시인 도 시골인 도 아닌 것이 좀 억울하기도 어눌하기도 한 내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중얼거리는 소리들 듣던 남편이 고단하면 잠이나 잘 것이지 뭐하냐고 불을 끄란다.

 

 매일매일 시간이라는 비용이 누적돼서 대책 없는 사채 이자처럼 불어나는 것을 그냥 방관할 수 없어, 시골 내려오기 직전까지 남편과 같이 생활전선에 있었던 기량은 아직 죽지 않은 것 같기에, 이제라도 힘에 겨운 밭일 일부를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찾아봐야겠는데.

 

 여유롭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시골스러운데, 적응하기에 급급하여 정신이 병드는 줄도 모르고 미련스럽게 애쓰며 살고 있었다.

친정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것도 풀과의 전쟁도 나만의 책임감이라는 착각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다.

지나친 책임감도 병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좀 슬슬 여유로워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