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풍경이 드러나다
김낙향
2020. 4. 17. 22:38

풍경이 드러나다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지분거리며 발에 스며드는 빗물, 모퉁이에 오종종 모인 도토리, 물 고인 논에 송사리 떼 같은 햇살이 말하고 있어요. 산천은 초목으로 쓰인 울창한 이야기책이고, 손목이 아프도록 뽑았던 풀은 한 계절에 기록될 표현의 자유였으며, 뿌리째 뽑아도 거듭거듭 돋아나던 풀은 내가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반항의 문자였습니다
휑한 텃밭을 홀로 지키고 있는 손톱보다 작은 꽃 한 송이 무릎 사이로 불행이 들어올까 싶어 촘촘히 여민 초록 치마에 방울방울 맺힌 말간 눈물에서 죽은 풀 환상통 같은 떨림을 읽다가 문득 지난겨울 읽었던 풍경 한 페이지가 떠오릅니다 눈이 푹푹 내리는 날 단풍잎 하얀 시트 밑으로 삐져나온 앙상한 발목 식어가는 떨림이
소연 김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