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구십을 훌쩍 넘기고 두 해가 더해진 나이가 무겁다는 친정어머니와 살다 보니
"올해 내가 넘길라" 하는 말을 오 년째 듣는다.
연골이 다 닳은 무릎과 굳어버린 어깨가 아프니, 하루하루 사는 게 고통이리라.
" 몸을 생각대로 쓰질 못하니 죽은 거나 진배없다" 하며 매일 죽음이란 말을 소환하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윤동주의 <서시> 한 대목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죽음은 별과 같아야 한다. 별처럼 맑고 반짝이는 죽음이 되려면 시인의 시 속에 대사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려고 애써야 할 것이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것처럼 인생과 인생 틈새에서 이는 바람에 얼마나 괴로워하며 살기나 했는가를 뒤돌아보아야 한다/는 글을 내 수첩에서 다시 여기에 옮긴다. (저자 이름을 적어 놓지 않아서 아쉽다)
맑고 투명한 삶, 정갈한 삶을 사랑하여 맞이하는 윤동주 시인의 죽음, 시대의 배경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냥 죽음이라는 두 글자는 나이기도 하기에 생각이 깊어진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에게 이는 모든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돌이켜 본다.
왜, 하필, 어째서, 원망하며 내가 아닌 네 탓으로 돌리느라, 그 괴로움을 진심으로 보듬어 본 적 있긴 있었던가
개망초가 바람에 흔들리듯 그리 자연스럽게 흔들려 본 적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동안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여러 번 읽었지만, 애석하게도 일흔두 번째 고개에 다다라서야 이런 사색에 잠기다니.
그동안 살아내느라 이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려니 슬퍼진다.
일흔의 나이가 문득문득 한 발짝 씩 가까워지는 죽음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단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은 물 건너 같지만, 이제라도 나를 사랑하며 맑고 투명하게 닦아야지 하며, 우두커니에서 벗어나 밋밋한 것 말고, 비 온 뒤에 반짝 뜨는 무지개 같은 잠깐 느끼는 행복의 여운이라도 엮어보아야지 하고.
지겹다. 힘겹다고 하던 잡초 뽑는 일도 즐기며 해야지.
잔디를 깎고 마당 언저리에 꽃을 심고, 멋대로 뻗친 가지를 다듬어주는 여가로 즐겨야지.
그것은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뜰을 아름답게 다듬는 정원사의 시간과 다를 바 없다고 말이야.
나이가 드니 몸은 골몰해도 마음은 외로울 때가 많다.
외로움은 다소 수다로 바뀔 수 있지만 시골 생활에서의 외로움은 적막이고 고독이다.
이 늦가을, 네온사인도 카페도 없는 막막한 고요와 친해지려고 애쓰며 그러나 단조로운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서시>가 태어난 시대와 배경은 묻어두고, 읽히는 대로만 생각해서, 맑고 투명한 영혼을 키워 후회 없는 죽음을 생각해 보고 싶어서다.
시간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지만, 마지막에 맞닥뜨린 시간은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 생의 시간 뒷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은 망자의 살아온 삶을 평한다.
뒷모습을 좀 더 좋게 보이려면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생각 없이 걸어선 안 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