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눈빛
어릴 때는 앞산이 낮아 그 너머 것이 보일 것 같았는데, 지금은 쭉쭉 뻗은 소나무 키에 하늘 평수도 좁아져 조금은 답답하지만, 귀향하여 육 년째 늘 푸른 소나무 눈빛과 마주하며 살고 있다.
재물 복은 없으나 자연은 마음대로 눈요기할 수 있는 복은 타고났다.
한때 우리나라 각 지역에 있는 명산을 오르는 칠 년 동안 숲과 계곡 풍경을 원 없이 취하고, 무릎이 비명을 지를 즈음 카메라를 들고 야생화를 찾아 계곡 속살을 누볐던 계절을 열어볼 때마다 생생한 푸른 물감으로 남아 있다.
그중 잊지 못할 기억은 기생화 찍으러 안산 정상 오를 때와 장수대에서 시작한 서북 능선에서 솜다리 찍던 날, 명지산 중턱에 광릉요강꽃을 찾아가던 날이다. 다리에 쥐까지 났었으니.
대단한 정열도 몸에 스며드는 세월에는 어찌할 재간 없이 시들 수밖에.
일흔하고 삼 년이 더 보태어진 지금은 낮은 곳에서 소나무 숲을 울타리 삼아 하늘을 천장 삼아 사는 자연인이다.
사방이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 것처럼 마음대로 즐기는 이 또한 복이 아니겠는가.
시골에 산다면 어떤 이는 멋있는 집을 상상하는데, 내 집은 딱 9평.
백 년이 넘는 친정어머니 집 바로 밑에 이동식 집을 짓고 마당은 잔디를 깔았고, 한쪽에는 눈비와 우박을 막아줄 지붕만 올린 주차장이 있다.. 대여섯 발짝 가면 새들이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닭장이 있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빼곡한 집 언저리에는 두릅과 오가피나무, 취나물도 산재하여 봄이면 끼니때마다 식탁도 늘 푸르다.
시골 생활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것은 종일 장독대에 내리는 햇살과 빨래를 고슬고슬 말릴 수 있는 빨랫줄이고 텃밭에서 고추와 야채를 그때그때 따 먹을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먹거리는 수고가 따른다.
물론 텃밭과 뜰이나 마당에 수시로 점령하는 잡초와의 전쟁은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을 제외하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눈만 뜨면 땅을 보는 습관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잡초까지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면 좀 편해질 수 있겠는데.... 시골 생활에서 나는 매일 땡볕 서너 말을 이고 조석으로 모기에게 헌혈해야 하며, 온갖 벌레와 지네와 뱀을 감당하며 장마와 가뭄, 운 나쁘면 우박으로 모든 것이 소실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토박이가 아닌 나는 살아낼수록 힘들다. 게으름을 피우면 삽시간에 밀림이 되니까.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나 소란스럽지 않은 시골의 평화로움에 스며들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