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마음 안에 풍경.2

무서리가 내린 날

김낙향 2022. 6. 14. 23:28

 

 

무서리가 내린 날

 

 

감나무에 매달려 있던 까치밥

흰 두건을 썼고

늙은 백일홍 상복을 입었다

상수리나무와 은행나무도 휑한 모습으로

문상객처럼 서 있고

텅 빈 화분과 항아리 실금 사이로

눈물길이 명료하게 드러나고

단풍잎도 다 화장을 지웠다

 

모든 초목

그동안의 과욕과 허울을 벗어버리는 예식이다

온갖 사유의 수채를 다 지우며

 

해마다 한 번쯤은 하얀 생애에 뛰어들어

나를 비워내야겠다

봄날 새순처럼 새롭게 피어날 나를 위하여

 

 

<에움길 시집 / 김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