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마음
긴 마음
내 집 앞 단풍나무는 올가을 가을볕이 좋았는지, 시퍼렇고 무성한 청춘을 불살라 속속들이 불게 붉게 물들어, 아침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더니 11월 막바지에 마지막 잎새 하나 없이 다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나무가 다 그렇지 하지만 나는 보았다.
지난해 이 단풍나무의 가을을. 그해 가을볕이 어땠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지 않았었다.
나뭇잎도 거의 반은 올봄 새순이 나올 때까지 제 자리를 지키다가 내가 관심 두지 않았던 몇 날 후 바라보니 다 사라지고 없었다.
올가을 붉은 단풍은 축복받은 것처럼 찬란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지난가을 단풍나무는 여름 장마가 너무 길었던 탓인지 불사르다가만 시든 청춘처럼 늙고 말았다.
늦가을 바람이 불어도 꿈적하지 않은 나뭇잎이 눈옷을 입었을 때는 잠시 풍경이 되었으나 겨울비에 젖어 축 늘어졌던 잎들이 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은 너무 스산하여 나를 너무 춥게 했다.
가을을 초라하게 보낸 삶이 스스로 미안해서
붉게 붉게 물들어야 하는 계절을 뒤돌아보며
바람에도 흐느끼듯 떨고 있는 듯한
같은 나무여도 해마다 경작하는 삶이 다르다
사람도 나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귀한 줄도 모르고 소비한 젊은 날들을 누군가는 힘겹게 누군가는 축복 같이 취하였지만, 그 끝은 반대일 수도 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생이다.
내 집 앞 단풍나무가 그랬을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지난해 가을은 너무 짧았다고
열심히 살았지만 그래서 힘들었다고
가을의 찬란한 기쁨을 나누지 못한 잎들에 미안해서
그래서 새순이 돋을 즈음까지 오래오래 보듬고 있었노라고
이렇게 긴 마음을 나에게 털어놓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