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향 2023. 2. 13. 21:28

 

기도

 

 

제가 오래 살게 되더라도

슬픔의 무게를

기쁨의 무게를 저울에 달지 않게 하소서

똑같은 행복이

똑같은 불행이 없듯이

외로움의 깊이도

슬픔의 두께도 다 다르니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게 하소서

 

노랫말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게 하소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권태로워도 품위를 잃지 않고

소소한 일을 하며 늙어가게 하소서

 

남의 불행을 보여주면서 나의 행복을 확인시키시고

남의 아픔을 보여주면서 내 아픔이 견딜만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신 분

 

늙어서 생산적인 일을 못하더라도

허망함과 외로움으로 빈둥거리며 눈물짓지 못하게

살아내야 하는 삶을 맑은 정신으로

말없이 찾아오는 늙음을

떳떳이 맞이할 수 있도록 하소서

 

 

김락향 시집 ≪무릎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