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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 오영록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2. 11. 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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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언제나 따라다니는 이 사내
발걸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시시때때로 따라다니다가
잠자리까지 따라 드는 얄미운 사내
비 오� 날은 얼비친 빗물에 들키면
아닌 척 딴전을 피우는 사내
아무리 반가워도 말을 걸거나
치근거릴 줄도 모르고
위험해도 먼저 버리는 법이 없고
좋아도 표 내지 않는 점잖은 사내
자전거 타면 저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취해 비틀거리면 놀리기라도 하듯
저도 따라 비틀거리는 사내
듣지 못하는지 말도 전하지 않고
입을 열지 않으니
그 무섭다는 세 치 칼 한번 꺼내지 않는 사내
아무리 아파도 표정 한번 보이지 않고
기뻐도 소리 내 웃지 않는 무뚝뚝한 사내
가끔 어둔 밤길 동무라도 할라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면서
저벅저벅 소리만 내며
한발 앞서 가는 사내
검은색 바바리만 입고 다니는


 

 

 

 

김해자 시인

 

출생 : 1961년 (전라남도 신안)

학력 :고려대학교 국문학 학사

데뷔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수상

       ; 2008년 제10회 백석문학상

       ; 전태일문학상경력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시창작 강사

       ; 노동문화복지법인 상임이사



오영록 님의 [그림자]는 올 여름엔가 보았던 님의 [거울]이란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선천성 농아로 비유된 거울, 침묵의 연작리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사물의 생리와 속성을 잘 관찰 하여 사물 자체가 말을 하게 함으로써, 읽는 자로 하여금 침묽을 통하여 진실의 어떤 측면을 강하게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판단해 버리지 않고 그냥 사물이 말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은 삶이나 시에서 매우 보기 드믄 미덕입니다.


이 시인이 보는 그림자는 발걸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시시 때때로 따라다니다가 / 잠자리 까지 따라 드는 얄미운 사내입니다. 아무리 반가워도 말을 걸거나 치근거릴 줄 모르고 위험해도 먼저 버리는 법이 없고 좋아도 표 내지 않는 점잖은 사내입니다. 듣지 못하는지 말도 전하지 않고 입을 열지 않으니 그 무섭다는 세치 칼 한번 꺼내지 않는 사내아자 아무리 아파도 표정한번 오지지 않고 기뻐 소리 내 웃지 않는 무뚝뚝한 사내입니다.


그 사내를 따라가 보면 내 안의 내가 보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넘어질 때나 한결같이 울고 웃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내 속의 더 큰 내가 보입니다. 일희일비하는 작은 나를 있는 그대로 관조하여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실체를 반영해주는 그렇게 점찬고 순정한 사내를 우리는 밟고 다니며 베고 잡니다. 심지어 세상에 그림자도 못 비치게 억압하기까지 합니다. 그 사내를 따라가면 그림자 같이 티 내지 않고 항상 옆에 존재하는 그를 떠나지 않는 순정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그냥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삽니다.) 때가 묻어도 넘어져도 그를 탓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한결같은 사람들, 그러나 늘 그곳에 당신과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 평생 바닥에 낮은 지대에 다신을 위치시키는 그런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앞에서 소래는 내가 아니라, 조용히 존해하는 그들이 “한발 앞서” 갑니다.

 

 

 

 

 

거울



선천성 농아였는지
천둥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병증이 발견되지 않은 후각은 스스로 닫았다
소리도 냄새도 다 가슴에다 품어
오로지 빛과 그림자로만 말한다
험한 냄새도 날카로운 소리도 다
포식으로 먹고사는 그는 무표정이므로
낯빛이 진실하다
본대로만 전하는 가식 없는 얼굴
자신의 감정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모두의 우상이다
아름다운 외출을 서약하듯 그 앞에서
닮아가기를 소망하며 주술을 건다
귓불 어디쯤 입술 가까이하고
속세의 멍에를 오늘도 벗지 못했다고
고해성사를 하지만
석불 같아 메아리만 보낸다
가끔 한마디만 해 달라며 유혹해 봐도
꿈쩍하지 않는 저는
선천성 기형도
침묵의 고수도 아닌
생불(生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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