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저 거대한 식욕
시커먼 먹구름도 한입에 턱 물었다
잠자리며 나비며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폭식
쏟아지는 햇볕을 트림도 하지 않고
석양까지 야금야금 먹고 있다
어두워지는 것은 저 유리가 태양을 다 먹었기 때문이다
하여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도
다 저 유리의 포식 때문이라는 메인뉴스
구름을 빼앗긴 하늘이 파랗게 질렸다
가로지르던 기러기를 간식으로 놓칠 리 없다
껌처럼 이파리들을 씹어 엽록소를 먹자
산천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밤이면 별을 먹고 가끔 보름달을 알사탕처럼
밤새도록 우물거리면 점점 작아졌다
이빨이 누레지면 소나기가 가끔 양치를 해주기도 했다
그런 다음 날은 여지없이 날개가 있는 것들이
머리를 부딪치고 혼절하기도 하고 심하면 죽기도 했다
급한 여자들이 화장을 고칠 때면
힐끗힐끗 눈동자를 돌려 가슴을 훔치기도 했다
아무것도 편식하지 않는 포식자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지만, 사내의 배는
불룩하지 않다
간만 보았으므로 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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