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작문학상 수상작
.....- 외 4편,
..."질-改作"
김경미 시인
어머니는, 옷은 떨어진 걸 입어도 구두
만큼은 비싼 걸 신어야 한다. 아버지는, 소고기는
몰라도 돼지고기만큼은 최고 비싼 질을 먹어야 한다.
그렇다 화장 하다 만 듯 사는 친구는, 생리대만은 최고급이다
먹는 입 싸도 칫솔에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
누구는 귀를 잘라 팔지언정 음악만은 기어이 좋은 걸 쓴다.
다들 세상의 단 하나쯤은 질을 헤아리니
그렇다 라일락꽃들의 불립문자 탁발의 봄밤 혹은 청색
다도해의 저녁일몰이야말로 아니다 연애야말로 삼각
관계야말로 진정 질이 전부이다 고난이야말로 매혹의 우단 벨벳 검은 미망인 기품으로
잘 지어 입혀야 한다. 몸이야말로 시계를 꺼낼 수 없는 곳
영혼이든가? 기도야말로
그렇다! 품종이 좋은 하늘을 써야 한다. 관건은,
가장 비싼 것 하나쯤엔 서슴없이 값을 치르니 귀함이 가장
싼 셈, 숨만큼은 정말 제대로 비싼 값을 치르는 것
다 쓴 이쑤시개처럼 봄햇빛들 쏟아지는
오후
싸구려 플라스틱용품들 한없이 늘어놓아진 봄길에
값이여 말 자꾸 많이 하지 말아라
♧
《제5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중에서
...심사평 -
..................................- 황동규 시인 -
김경미가 이처럼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니! 처음 중앙일보 당선작부터 김경미에게는 사물과 사태를 뒤집어 속내를 꺼내보는 자질과 언어를 예민하게 다루는 능력이 있었고 그 자질과 능력은 그 후 그네의 시에서 계속 확인되기도 했다. 둘 다 시인에게 거의 필요충분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렇다, '거의'일 뿐이다. 완전한 하나의 시인이 되는 데는 그것들 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용기 혹은 무모함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시들에는 그 용기와 무모함이 들어 있다. 그것이 「식물일지 2003」에 나타나는 '수입이 꾸준하던 일을 그만둔' 것이 계기가 되어 생긴 현상인지,「잘 모르겠다.」에 보이는 '내 사랑 겉묘엔 선혈의 망치못' 때문에 생긴 상처와 그 치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김경미가 자신의 과거를 넘어선 것은 확실하다.
늘 하는 진부한 얘기지만, 상은 문학의 결승점이 아니라 전진 기지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한번 사람들 앞에 보라고 내던진 시 정신을 슬쩍 거두어들여 조그만 완성들을 위해 쓰며 앞날은 보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축하한다.
"야채사(野菜史)"
- 수상시인의 대표작,
.......................- 김경미 시인 -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 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 나왔든가
.- 同작품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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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소감
.............- 막막함 속에서
바깥 세상에서 크게 속상한 일 겪고 간신히 마음 다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파 다듬 듯 울면서 가다듬는 즐거움. 단추달 듯 입 다무는 즐거움.〉으로 시작되는 메모글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던 늦은 밤이었다.
허공을 가던 좋은 소식 하나, 내 흰 전화기에 문득 내려앉았다.
그 소식, 받은 게 아니라 마치 가로챈 것만 같아 전화기를 든 손이 뜨거웠다.
시에 대해 할 말 별로 없다.
불 끄고 누웠지만 아직 잠은 오지 않거나, 술자리에서 혼자 슬그머니 일어나 나오거나, 물들어가는 은행잎에 문득 가슴 무너지거나 할 때, 어떤 감정과 글자들이, 마음같이 마냥 잡아당겨지지 않는…… 잡아당길 수도 없는…… 삼각의 혀만큼만 내밀어진다는 게 진저리나게 막막하기도 하고 기뻐 벅차기도 하다는 것. 그럴 때 조금쯤 울먹대는 눈을 하는 내가, 내가 아는 가장 지순한 나라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칠순 후반의 엄마는 당진으로 훌쩍 이사를 가서도 집마당에 교회부터 세웠다. 강대상과 피아노와 자줏빛 우단 헌금통과 화병의 들꽃은 있지만 목사님도 없고 신자도 거의 엄마 혼자인 교회다. 그 적적함에 조그만 봉투라도 하나 밀어넣으면 엄마는 천국을 본 듯 기뻐하시리라. 전화 끊자마자 두 팔 활짝 벌려 축하해주던 광헌과 새벽도 고맙다.
그리고 황동규, 김주연, 김명인, 세 분과 예심 심사위원들께, 가장 막막해하는 시인을 찾아내어 격려해주신 마음, 잊지 않겠다 하면 혹 무례가 될까?
어느 날 한 자리 모인 이들의 한끼 밥과 술을 시로써 다 낼 수 있다는 것도 고맙고 신기하다.
............................................2005년 12월
.................................................김경미
."식물 일지 2003"
....- 수상시인의 대표작,
.......................................- 김경미 시인 -
오래도록 수입이 꾸준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새처럼 허공에 폐 끼치기로 했다
낮이면 햇빛멀미에 아득해져 입과 혀로 하는 일들 줄이고
종일 식물도감속 물봉선 개바위채송화들로부터
〈족도리꽃이 잎에 가려 안보인다〉거나
〈꽃잎의 수가 꽃마다 다른 이유는
곤충도 모르고 꽃도 모르고 사람도 물론 모른다〉는 전갈만 듣거나
저녁이면 더러 토하고 그렁그렁한 눈물 속에서
빈천의 죄책감인가 청담인가 냄새들 맡고
버드나무 같이 휘어진 노을 아래 어디서부터 쉬는 것이고
힘들이는 것인지 모를 기운으로 짐승의 길을 생각했다
허공을 파나가는 광부나비도 나쁘지 않겠지만
견마도 괜찮다
활엽잎 같은 방석 접고 족도리잎에 가렸던 오랜 전화 번호들
기꺼이 동물의 장터로 다시 나갔다
- 同작품집에서 -
........□ 심사평
.........- 자성적 파열음의 성과
.................................- 김주연(교수ㆍ문학평론가) -
예심에서 올라온 시인들 가운데 이창기, 이재무, 허수경, 송재학 등 쟁쟁한 중견들의 작품들은 그 자체가 모두 우리 시의 지금 수준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 더러는 씁쓸한 느낌을 갖게 하는 시들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 우리의 현실과 정서, 무엇보다 언어를 지켜온 데에 대한 감사를 누려 부족함이 없겠다. 수상자로 결정된 김경미의 작품들은 조금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정보화된 탈공업사회의 풍속과 이에 반응하는 인간의 소피스트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수상작「질(質)」을 포함한 여러 작품들에 나타난 이의동음(異意同音)을 포함한 언어유희는 일상의 지루함, 왜곡된 행복 따위에 대한 파괴의 파열음일 터인데, 격렬하지 않고 자성적이어서 호감이 간다. 시적 애매모호성 아닌 뜻의 불분명함과 같은 어색함이 잘 다듬어진다면, 이러한 방향에서 이 시인만의 좋은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된다.
. "굴원의 불빛"
... - 묵언록 3
.....................- 김경미 시인 -
(추란이며 비산의 목란, 물가의 숙망이며
혜치,
추국의 낙엽)
이소(離騷)가 쓰다 만 그런 한자떨기들이
그냥 위로가 돼요
마음 하나 헐어
가만히 태우고
요즘도 일기나 편지 따위 태우는 냄새가 있을까
국사도 없는
인간도 없는 막막한 도성 사람들……
(난지며 전혜, 비비, 경지를
꺽어다 반찬을 만들고……)
그 이름 낯선 굴원의 꽃들
한테로
그냥 가만히 귀양갈까 해요
. - 同수상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