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남는 눈
강영은
뒤꼍이 없었다면, 돌담을 뛰어넘는 사춘기가 업었으리라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쓸어안은 채 쪼그리고 앉아 우는 어린 내가 없었으리라 맵찬 종아리로 서성이는 그 소리를 붙들어 맬 돌담이 없었으리라 어린 시누대, 싸락싸락 눈발 듣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눈꽃 피어나는 대나무처럼 소리 없이 눈 뜨는 밤이 없었으리라 아마도 나는 그늘을 갖지 못했으리라 한 남자위 뒤꼍이 되는 서늘하고 깊은 그늘까지 사랑하지 못했으리라 제 몸의 어둠을 미는 저녁의 뒷모습을 알지 못했으리라 봄이 와도 녹지 않는 첫사랑처럼 오래 남는 눈을 알지 못했으리라 내 마음 속 뒤꼍은 더욱 알지 못했으리라.
- 시집 <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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