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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 문태준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09. 3. 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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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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