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밭에서
(평창을 돌다가)
깊은 산에 와서도 산보다
무밭에 서 있는 게 좋아
푸른 술 다 마시고도 흰 이빨 드러내지 않는
깊은 밤의 고요
그 목소리 없는 무청이 좋아
깨끗한 새벽
저 잎으로 문지르면
신음 소리 내며 흘러내릴 것 같은 속살
밤마다 잎에다 달빛이 일 저질러놓고 달아나도
그때마다 흙 속으로 하얗게 내려가는
무의 그 흰 몸이 좋아
땅 속에 백지 한 장 감추고 있는 그 심성도 좋아
달빛이 놓고 간 편지 한 장 들고
무작정 애를 배는 대책없는 미혼모같은
배 불러오는 무청의 둥근 배가 좋아
무밭을 걷는 게 좋아
내 정강이 툭툭 건드릴 때 좋아
뽑으면 쑤욱 뽑힐 것같은
철없는 그 사랑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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