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 김소연)
벌거벗은 사람이 되어 부끄럽게 서 있던 그 자리에
더 벌거벗은 한 사람이 나타나 오랫동안 당당하게 울었다
자궁에 손을 넣어
사산된 새끼를 꺼낸 경험을 들려주던
경마장 남자의 껍질 같은 손을 보았다
아픈 말〔馬〕을 사람들은 고기라고 부른다고
치킨을 나눠 먹으며 나는 고기로 앉아
헐벗어가고 있었다
직장에 다닌 시간보다
해고된 채로 농성을 하고 있는 시간이 더 오래되었다는
한 남자가 현관에서 신발을 정리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채로
나는 겨우 신발을 신었다
죽는 순간엔 굳은살도 다 풀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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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직접 봤다는 남자와 나란히
담배를 피우며 걸었다
기차는 레일 위로 당당하게 달렸다
희망이 고문에 가깝다고 말하는 친구가 옆에 앉았다
희망이 고기에 가깝다는 말로 들렸다
사람을 만난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어딘가가 깊이 파였고
더 이상 무섭지도 않았다
《문학과사회》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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