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 김연아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4. 5. 16. 14:43

본문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김연아

 

 

 눈 내린 자작나무숲을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나는 윌리엄 블레이크를 모르고

 

  나는 나를 모르고

 

  내가 안다고 말하는 꼭 그만큼

 

  정말 알지는 못하고

 

  지금 내 머리 속에 사는 남자, 윌리엄 블레이크

 

 

 

  짐 자무시의 흑백필름으로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블레이크를 알지 못하는 블레이크

 

  이미 죽은 남자 윌리엄 블레이크

 

  더 이상 빛을 방사하지 않는 검은 별을 따라

 

  말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흐르지 않는 나무도 순례를 하는 걸까?

 

  하늘에서 땅 속으로 이어지는 수직의 순례

 

  하얀 자작나무 껍질 아래,

 

  별의 비밀 같은 어둔 글자들이 돋아나네

 

 

  그대는 벌써 하루의 끝에 와 있고

 

  오늘 나는 어둠 속에 잠겨 있어

 

  불이 꺼진 재처럼, 나는 나를 완전히 잊지는 못하고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잠시

 

 

  붉은 길이 인도하는 마음의 일곱 번째 방향을 생각하지

 

  우리는 원래 말을 모르는 존재였네

 

  말은 꽃과 같아서 땅에서 떠나면 시들고 말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언어를 가지고

 

  나는 밤으로 가네, 말을 잊어버린 사람을 찾아

 

 

  어둡게 빛나는 그대 눈동자로 길은 자라지만

 

  길은 언제나 한 발 앞에서 멀어져가네

 

  어떻게 내가 길이 될 수 있을까?

 

  기억이 복제되는 순간을 어떻게 사라지게 할까?

 

 

  내 노래를 가지고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꽃으로 덮인 카누에 실려 어스름을 넘어가네

 

  바다 위에 걸린 하늘문이 닫히네

 

  눈꺼풀이 내려오듯 그렇게

 

 

 

 

 

* 윌리엄 블레이크 : 짐 자무시 영화 <데드맨>의 주인공

 

                            영국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동명이인

 

 

 

 

'마중물 > 시인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과 장미 / 김찬옥  (0) 2014.05.16
앙상블/ 황병승  (0) 2014.05.16
동일한 것 외 / 이장욱  (0) 2014.05.08
봄날 저녁의 수채(水彩) 외 / 박서영  (0) 2014.04.29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는 / 박완호  (0) 2014.04.2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