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김연아
눈 내린 자작나무숲을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나는 윌리엄 블레이크를 모르고
나는 나를 모르고
내가 안다고 말하는 꼭 그만큼
정말 알지는 못하고
지금 내 머리 속에 사는 남자, 윌리엄 블레이크
짐 자무시의 흑백필름으로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블레이크를 알지 못하는 블레이크
이미 죽은 남자 윌리엄 블레이크
더 이상 빛을 방사하지 않는 검은 별을 따라
말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흐르지 않는 나무도 순례를 하는 걸까?
하늘에서 땅 속으로 이어지는 수직의 순례
하얀 자작나무 껍질 아래,
별의 비밀 같은 어둔 글자들이 돋아나네
그대는 벌써 하루의 끝에 와 있고
오늘 나는 어둠 속에 잠겨 있어
불이 꺼진 재처럼, 나는 나를 완전히 잊지는 못하고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잠시
붉은 길이 인도하는 마음의 일곱 번째 방향을 생각하지
우리는 원래 말을 모르는 존재였네
말은 꽃과 같아서 땅에서 떠나면 시들고 말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언어를 가지고
나는 밤으로 가네, 말을 잊어버린 사람을 찾아
어둡게 빛나는 그대 눈동자로 길은 자라지만
길은 언제나 한 발 앞에서 멀어져가네
어떻게 내가 길이 될 수 있을까?
기억이 복제되는 순간을 어떻게 사라지게 할까?
내 노래를 가지고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꽃으로 덮인 카누에 실려 어스름을 넘어가네
바다 위에 걸린 하늘문이 닫히네
눈꺼풀이 내려오듯 그렇게
* 윌리엄 블레이크 : 짐 자무시 영화 <데드맨>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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