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안녕, 피쉬맨/ 박윤근
이 도심 주위로는 굵직한 어군이 형성돼 있다
수심의 저점을 읽은 누리꾼
솟아오르는 작은 고기, 민감한 입질도 놓치지 않는다
파도의 중간쯤에 구겨 앉은 남자 주위로
빠른 어족의 등락으로 물결이 친다
사내의 손이 마우스에 푸른 등을 켠 채
해저의 기억 안팎을 오가며 포인트를 찾지만
몇 시간 째 미끼만 갈아 끼우고 있다
밀물과 함께 고기 떼가 몰려든 온 객장은
상한가를 치고 빠져나갔지만
객장의 전광판에는 잡히지 않는다
불안해지는 일기예보 속
장세의 흐름이 하락 쪽으로 기울자
저울 위 생선처럼 저 남자
비릿한 땀 냄새를 풍기며 기우뚱거린다
팽팽하던 낚싯줄이 수면 아래로 풀려간다
증시 막장, 깜박이던 전광판 불빛도 꺼지자
어둠이 남자의 의자에 해초처럼 감긴다
저 지평선과 수평선이 키스할 때
구름은 자꾸 노을을 밀어내지
밤이 노을의 등에 실려 찾아오면
우리는 또 다른 기원이 될 수 있을 거야
마침내 다르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완전한 種이 될 수 있겠지
이곳의 반대극점에선 바람의 껍질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바람도 새로운 種이 되려는 중인 걸까
아직 다가오지 않은 계절을 생각하며
우리는 함께 새로워지기 위해
서로 메마르기만을 기다리지
바람은 노을이 사라지는 곳에서
달빛과 짧은 입맞춤을 하고 있어
우리가 완전하게 합쳐질 때야 비로소,
하나의 種이 될 수 있을 거야
언제나 같은 모습의 누드가 선명해지고깊은 바닷속으로 끌려가고 있다
오랜 시간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통발 하나
파닥이는 고기 한 마리 입에 문다
이곳에서는 철 지난 바다의 풍경을 묻지 않듯
도시에서 떨어져 나간 버그*처럼
사라진 남자의 행방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는다
* 버그: 시스템 오동작의 원인이 되는 프로그램의 잘못.
우수
너에게 나라는 질량/김유섭
너를 만날 때마다
무게의 눈금이 보고 싶지만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을 따라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단다
이곳이 아름다운 별이라 하더라도
확신 없이 떠돌아야 하는 궤도
함께 웃고 떠들고 집으로 돌아와 백지처럼 증발해버린
너를 마주하게 되는 날들이 눈부셔
나는 자꾸만 허공 쪽으로 고개를 꺾고
허리마저 비트는 버릇이 생겼단다
가슴을 열어 펼쳐 보이는 그 짓
한 줌 부스러기 같아서
다가가 덥석 껴안았던 그 어색한 눈빛
나는 형틀에 묶인 얼굴로
내동댕이쳐져서 흘러 다닌단다
얼마나 자주 낯선 질량 속으로
나를 던져 넣어야 했던지
한 치 오차도 없는 저울의 계산법으로
너는 휘파람 불며
이 광활한 세계를 잘도 오가는구나
우수
입술/김도형
우리가 떨어져 있는 순간
이 계절이 지나가면 나만의 種을 가질 수 있을까
예기치 못한 표정은 머리카락처럼 자라나지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모방일 뿐
서로 붙어있을 때 침묵을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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