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의 독방
김경미
아침이면 그녀, 순례에 나서네, 복덕방 아저씨
어디 없나요, 가시 없는 잎사귀들의 마을,
봄의 초록 은행잎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서양 물감빛들 한 켜씩 셀룰로오스를 떨구는 방,
절친한 가족도, 낙지 같은 가재도구도,
정부도 찾지 못할, 나무 꼭대기나 11월의 바닷속인들,
늦가을 포도잎이나 신문지로 벽지를 댄들,
물그릇처럼 고여, 고여 유화 그림처럼 짙어지는,
하루 몇 시간쯤 수증기처럼 아무도 모르게
홀로 나비짓하는,
누구와도 섞이고 싶지 않은 시간, 그런
방이요, 창호지같이 제 마음에 은은해지다가
빈둥대다가 울다가
수녀들 기도 소리에 몰래 마음을 달래다가
삿된 사랑에 마음 서성이다가 그 아무도 모르는 독백같이
혼인 속 독방은 왜 자꾸 필요한지요, 아침마다
지상에 없는 주소 들고 그녀, 평생의
반려자인 듯 복덕방 아저씨와 세상의
모든 방문들을 그녀, 자꾸만
열고 또 열어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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