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기혼의 독방 / 김경미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5. 2. 15. 22:29

본문

기혼의 독방

 

김경미

 

아침이면 그녀, 순례에 나서네, 복덕방 아저씨

어디 없나요, 가시 없는 잎사귀들의 마을,

봄의 초록 은행잎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서양 물감빛들 한 켜씩 셀룰로오스를 떨구는 방,

절친한 가족도, 낙지 같은 가재도구도,

정부도 찾지 못할, 나무 꼭대기나 11월의 바닷속인들,

늦가을 포도잎이나 신문지로 벽지를 댄들,

물그릇처럼 고여, 고여 유화 그림처럼 짙어지는,

하루 몇 시간쯤 수증기처럼 아무도 모르게

홀로 나비짓하는,

 

누구와도 섞이고 싶지 않은 시간, 그런

방이요, 창호지같이 제 마음에 은은해지다가

빈둥대다가 울다가

수녀들 기도 소리에 몰래 마음을 달래다가

삿된 사랑에 마음 서성이다가 그 아무도 모르는 독백같이

혼인 속 독방은 왜 자꾸 필요한지요, 아침마다

지상에 없는 주소 들고 그녀, 평생의

반려자인 듯 복덕방 아저씨와 세상의

모든 방문들을 그녀, 자꾸만

열고 또 열어보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