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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 박하린

마중물/시인들 시

by 김낙향 2015. 3. 3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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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天絲)



뭉게뭉게 피었던 허공의 꽃
그 꽃의 끄트머리에 물레질하면 실이 뽑혔다
질기고 투명한 면사는 무엇으로도 헤지지 않는
허공의 면사
다 뽑힌 구름에서는 가끔 씨앗의 껍질이 하얗게 떨어져
쌓이기도 했다
껍질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눈이라고
안개의 뼈라고 했다
구름에서 뽑은 면사는 투명하였으므로 마음에 입혔다
이 옷을 입은 심장은 아무도 알아볼 수 없다.
가끔 나의 영혼이 도난당하기도 했고
누군가의 영혼을 훔쳐보기도 했다
일생을 떠야 겨우 한 벌의 옷을 완성하는 뜨개질
어떤 이는 좋은 면사를 뽑기 위해 깊은 산으로 들어
부엉이의 울음으로 삼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닷가에 가서 쪽빛 면사를 뽑아오기도 했다
옷을 다 완성하였다가도 한 코만 놓쳐도 다 풀어지고 마는 옷
손톱에 반달이 보였던 것은
그 투명 사에 달빛 물이 들었던 거다
꾹 눌러 짜면 보이지는 않아도
주르르 물이 흐르기도 했다
이 옷을 걸치면
모두가 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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