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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생을

나의 뜰/마음자리

by 김낙향 2019. 9. 2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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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생을

 

 

 누가  인생을 사십부터라고 했나. 

 인생은 육십부터 일수도 칠십부터일 수도 있다.

 

 젊어서는 봄이 오긴 왔는데 언제 가버렸는지, 무성한 여름 그늘에 한가하게 앉아 본 기억도 뚜렷이 없고 가을을 찬란하다 예찬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냥 봄이다, 여름이다, 가을이구나 하고 마트 물건 둘러보듯 계절을 둘러보았는데.

 

 노거수는 가운데 부분은 죽지만 껍질 안쪽에서 생을 유지하는 젊음이 있고, 사람은 피부 안쪽이나 바깥쪽 모두 늙지만 가운데 부분 마음에서 생을 유지하는 젊음의 유전자가 생성된다는 말처럼, 꿈질거리며 고개를 쳐드는 내 안에 연둣빛 봄을 맞이한 것도 육십이 갓 넘어서다.

 인생의 물레를 돌리는데 서툴러서 사는 대로 생각했으나, 육십이 넘고 칠십이 넘으면 생각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사십 중반에 도착한 딸아이가 내게 다니러 왔다가 하늘에 뭉게구름을 보며 참 예쁘다고 하는 말을 할 때 "그래 너도 나이를 먹었구나." 했다.

 예전에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사소한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은 감정이나 영혼이 원숙해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의 여유도 생겼다는 것이리.

 

 나를 괴롭혔던 영양가 없이 비대해진 무기력과 조바심을 벗어던지고 내 뜰은 내가 가꾼다는 욕심을 가져본다.

 뜰에 핀 백일홍과 샐비어가 작년 것이 아니듯, 그 향기를 즐기는 벌과 나비도 작년 것들이 아니다.

 모든 식물이 해마다 새롭게 나고, 모든 미물이 새로운 생명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은 예외인 줄 알았다.

 나이는 고집이나 아집이 아니라, 투박한 허물을 벗고 변해야 하는 것이 나이라고 우기고 싶다. 

 

 나뭇잎은 혼자 흔들릴 수 없지만, 사람은 혼자서도 흔들릴 수 있다.

 봄바람, 꽃향기에도 흔들리고, 바람에 날리는 벚꽃에도, 책을 읽으며 남의 경험에도 흔들리고 하물며 침묵하는 숲에도 흔들릴 때가 있다.

 흔들린다는 것은 변화다.

 칠십이 넘었다고 흔들리지 않으면 인생은 빈 술잔이다.

 

 올여름 방학에 시골 온 손자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다. ikon의 노래 <사랑을 했다>이다.

 자꾸 들으니 나도 빠져든다. 늘어지고 때로는 청승맞은 트로트보다 더 쿨하고 깔끔하다.

 그래 노래 가사처럼 내 생도 한 편의 드라마였고, 영화였다.

 /둘이 사랑을 했고 / 지지고 볶으며 싸웠고 / 때로는 따스한 봄으로 지내기도 / 갈비뼈 사이 찌릿하도록 슬픔과 외로움 / 미움을 했다 / 조명이 꺼졌다//

 

 그러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

 드라마가 종영되면 딴 드라마가 시작되듯이 조명이 꺼지면 켜면 된다.

 내가 차린 매직 샵에서 따스한 차 마시며 자기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면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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