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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뜰/마음자리

by 김낙향 2019. 2. 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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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을 걷는 남편 청을 어렵게 승낙하고 운전하고 있는지 벌써 한 해가 넘었다.

    800미터 고개에 내려주고 혼자 차 안에서 견디다가 날이 새면 아래로 내려와 양지바른 곳에 주차하고 나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은행나무, 감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외 모든 활엽수가 바람에 쓸려 구르다가 일부는 구석에 쌓이고 쌓인다.

  산이 헐렁해진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들락거리는 구름도 한가롭다.

 

 숲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생각한다.

  우후죽순 자라난 나무와 덤불이 얽히고설키다가 옆에 나무를 감고 오르기도 하고, 넝쿨에 감긴 나무 허릿살이 움푹 짓눌려도 견디고, 옆으로 밀면 밀리고 뒤로 당기면 휘어지고 거부하지 않는 순응. 촘촘하게 있는 나무도 부족한 공간에서 햇살을 좀 더 받으려고 척추만 길쭉하게 키운 탓에 그늘에 잠긴 아래 가지는 곧 퇴화할지언정 자라난다.

주어진 환경에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산다는 것뿐, 숲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었으니. 이런 소나무 숲이나 우거진 잡목을 보면 여행 중에 만났던 멋진 가로수나 등산하며 보았던 우람한 소나무가 생각난다.

  바람이 들고나는 공간과 햇볕과 소통하며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자란 나무 풍채에 감동하여 카메라에 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녹음의 무늬와 수채가 생생하다.

 

  숲을 보면서 생각 한다. 나무나 사람도 너무 가까이 서 있으면 상대가 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간격을 두고 자라는 나무와 가로수를 볼 때마다 우리도 저와 같은 풍경으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상대가 풍기는 색깔과 개성에 부닥치지 않는 존중의 간격으로. 눈동자를, 눈꼬리 주름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미소를 찬찬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리, 달싹거리는 입술을 바라보며 입가에 삐져나오는 촉촉한 외로움을 읽어 줄 수 있는 그 거리. 팔을 뻗으면 손을 편안하게 잡을 수 있는 간격.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면 그 친밀함으로 알게 모르게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을. 이렇게 되면 바로 옆에 있다가 얼기설기 엉켜버린 나무와 넝쿨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해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생각도 조금씩 자라는 것 같다.

  적당한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워 보이는 것, 적당한 간격은 배려와 이해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니 얼굴에 무늬 진 삶의 지문이 더 잘 보였다.

  나보다 먼저 웃고 있는 눈빛에서 애틋한 마음이 보일 때, 번지는 정이 참 따스하다는 것을 나이가 먼저 깨닫게 한다.

  자식도 함께 살 때보다 떨어져 사니 애틋함과 소중함이 서로 더 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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