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가는 여유를 즐겼으면
딸 내외와 일흔 중반을 넘기시는 친정어머니를 찾아뵙는 데 동행하였다.
차창 밖 먼 곳에서 천천히 뒤로 물러서는 산야의 풍경을 바라보며 장인과 사위의 대화가 깊어진다.
시골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위에는 심심산골 굽이 돌아가는 낯선 풍경이 설레나 보다 .
탁 트인 산야를 바라보며 장인, 장모와 첫 나들이를 가는 여행에 기분이 달 뜬 사위. 웃어가며 장인과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 길다.
그 옛날 비포장일 때 온종일 걸려서 처가를 갔다는 이야기와 겨울에 죽령고개 넘을 때 긴장했던 옛 시절 이야기에 귀를 쫑긋 열고 듣는 사위의 표정이 더 진지하다.
딸아이는 직장 생활에 쌓인 피로를 잠으로 푸는지 흔들리는 차에서 정신없이 잔다.
몇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주위는 산이다. 가도 푸르기만 한 산을 바라보는 것이 지루해졌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이야기도 끊기고 사위는 잠이 들었다.
직장 퇴근하고 늦게 출발했는지라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시골집에 도착하였다.
인사 몇 마디 나누고 저녁은 휴게소에서 먹었다는 말이 끝나자 "다들 피곤하겠다. 어여 들어가 자거라." 하는 어머니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잠자리에 든다.
아! 얼마 만에 맡아 보는 군불 냄새인가!
내가 어릴 적 붉은 흙을 마당 한가운데 퍼다 놓고 마른 짚을 썰어 물을 적당히 섞어가며 발로 짓이겨 벽돌을 찍어 마구간과 행랑채를 지으시고
사랑채 벽이 상하면 흙을 바르시고 그 위에 횟가루를 또 바르시곤 하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마루 밑 아궁이 연기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들어 고인 사랑방, 나에게는 그리웠던 군불 연기이나 도시의 젊은이에게는 생소한 냄새일 것이다.
생전 처음 시골을 경험하는 사위의 서먹한 모습을 보며"어떤가?" 하고 물으니 "아랫목이 따뜻하니, 좋습니다." 하며 웃는다.
계절은 초가을이나 산속 밤공기는 춥다.
더우면 잠 못 자는 남편은 윗목에 잠자리를 잡고 사위를 아랫목에 재운다.
"자네 나이에 나도 처가에 왔었는데, 그때는 전기도 없는 호롱불이었지." 하며 남편이 웃는다.
불편한지도 모르고 썼던 호롱을 지금은 민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 젊은이들에게는 작은 낭만으로 들리는지 운치가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 호롱불은 지금 생각해도 불그레한 빛이 따뜻해 보였다. 나에게는 불편했던 기억보다 그리운 낭만같이 떠오르는 추억의 한 가닥임이 틀림없다.
나는 안채에서 오랜만에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집간 후로 친정에서 하룻밤을 묶은 날이 별로 없었다.
늘 휴일 오전에 왔다가 저녁에 돌아가곤 했으니...
주름은 더 깊어졌으나 어머니는 늘 강건하신 모습이다.
오히려 자식을 걱정하신다. "젊은 사람들이 그 몇 시간 차에서 시달렸다고 그리 피곤하냐?" 하신다.
말씀은 자라고 했으나 그냥 잠자리에 든 것이 못내 섭섭하셨나 보다.
딸과 손녀를 나란히 눕혀놓고 좋으신지 손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시골 화장실 가기 싫다고 투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커서 시집을 갔노."하신다.
사는 이야기 하다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조반을 차리는 동안 장인과 사위는 논밭이 있는 들을 한 바퀴 돌아왔단다.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외가에 오지 못한 딸아이나 벽촌을 경험하지 못한 사위에게는 시골 아침 풍경도 특별하였나 보다.
밝아오는 창호지 빛에 잠이 깨고, 나무 격자무늬에 동그란 문고리 잡고 허리를 숙여야 들락거릴 수 있는 문, 돌쩌귀 삐꺽거리는 문을 밀고 나와 댓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붉은 흙이 단단한 마당으로 내려서는 기분 또한 생소하였겠지.
이른 아침 자동차 소음 없는 고요한 시골 길, 초가을 일교차로 아침 안개 살짝 드리운 길에서 이슬에 신발 콧등 적시며 산책한 느낌이 좋았는지 상쾌한 아침 공기의 청정함이 느껴진다며 환하게 웃는 사위.
깔끔 보다는 수수한 물건들이, 농기구들이 흙 묻은 채로 놓인 자유스러움과 다듬지 않은 잡초들이 집 주위 비탈에 숭숭 자라는 자연스러움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낯선 것들에 관심을 보이며 군데군데 둘러보며 이야기하는 딸 내외가 사랑스럽다.
숨을 길게 마시다가 타고 남은 아궁이 나무 탄 냄새에 부지깽이 들고 불씨를 들춰보는 사위, 돼지고기 구워 먹으면 좋겠다고 한다.
생각대로 그렇게 구워 먹는다. 지금도 어머니는 불을 입구에 모아 된장도 뽀글뽀글 끓이고 고등어도 굽는다.
시골의 서정을 정겹게 받아들이는 딸과 사위의 표정을 보니 마음 편하다.
딸아이는 외가 하면 화장실이 먼저 생각나 한사코 따라나서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지금도 길모퉁이에 떨어져 옛날 구조로 있으나 반듯한 벽돌로 지어져 반응이 한결 좋아졌다.
아침 수저 놓자마자 남편은 나를 재촉하며 사위와 딸을 앞세우고 청량산으로 향했다.
산을 좋아하는 그 마음이 산세 좋은 청량산을 딸 내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남편이 아이들보다 더 즐거워한다.
직장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귀한 시간이다.
청량사 입석대에 주차하고 숲이 무성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다문다문 색깔이 변하는 나무도 있으나 아직은 푸른 잎들이 많다.
콧등에 땀이 송송 날 즈음 응진전이 있는 동석대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바위에 선다.
응진전에 올라서니 텃밭에 나란히 핀 백일홍이 예쁘게 피었다.
고즈넉이 앉은 산사 둘레의 특이한 형상을 한 바위들의 풍경들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청량사 전경이 잘 보이는 어풍대에서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김생굴로 향하며 손을 꼭 잡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딸 내외의 넉넉한 걸음걸이가 한가롭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던 사람들, 느리게 걷는 저 걸음이 얼마나 오랜만이겠는가.
아껴가며 걷는 듯 가다가 서서 바라보고 또 돌아서서 걸어온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아버지와 아이들은 연신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느 순간 청량사의 독경이 산으로 퍼진다.
종교는 달라도 예불 소리의 여운에서 어떤 새로운 느낌을 아이들도 받았는지 독경 소리에 기울여 걷다가 산사 아담한 찻집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나무 탁자 옆에 앉아 솔잎차를 주문하였다.
그림처럼 걸린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모두 표정이 밝다.
일일이 순간의 느낌을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표정에서 내 감성과 소통함을 느낀다.
나오는 길에 산사 찻집에서 지현스님의 에세이 한 권을 샀다며 사위가 나에게 내민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책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사위가 주는 선물이라 그런지 여느 때보다 기분이 더 좋다.
가족이란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그냥 편하고, 말없이 같이 걸어주고, 좋은 것 같이 바라보고, 함께 느끼고 웃으며 눈 맞추는 것이 대화인 것 같다.
그 어떤 정황에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동하는 것이 가족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둔탁하나 수수하고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시골 풍경에서 느리게 사는 것을,
조금은 불편하나 여백이 있는 생활을 터득하고 종종 그런 생활을 체험하기를 권한다.
늘 무엇에 쫓기듯 분주한 삶,
급변하는 세태에, 다양한 문화에 적응하느라 쫓기듯 사는 도심 생활, 아이들이나 나나 도시에 중독되어 사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바람 한 점 없어 적막한 숲의 고요가 권태롭다 생각 들어도 가끔은 그런 풍경에서 마음의 여백을 느껴보기를 소망한다.
2004년 초가을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