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무릎에 앉아
이른 아침 등산 초입에 남편을 내려주고 공터에 주차하였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 굵어지며 나뭇잎과 망초꽃 위로 풀 먹인 홑청 구겨지는 소리로 온다.
하늘과 땅을 촘촘히 재바르게 누비는 비. 시침과 시침 사이에 나뭇잎 물방울이 달랑거리고 그 물방울에 망초꽃 왕방울처럼 크게 보인다.
그이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차창에 빗물이 무더기로 흘러내린다.
점점 힘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망초꽃, 뽕나무 잎이 고개를 숙이고.
나뭇잎들은 오래된 먼지를 씻어내느라 서로 비비고 터느라 부산하다.
나는 오전 내내 좁은 차 안에 있었다.
어둑한 산 끝자락에 안개 뭉글뭉글 피어오르더니 잠시 비는 멈추었다.
한입 가득 비를 물고 있는 풀 사이를 걸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물고 있던 물을 신과 바지 끝자락에 품어대는 풀들, 어쩔 수 없이 다 젖는다.
망초꽃 빼곡히 있으니 만개한 메밀밭 같다.
비를 피해 있던 잠자리 무리가 망초꽃 위를 날고, 새 소리 귀에 가득 차오른다.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 산기슭에는 숲의 습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무성한 잎에 짙은 녹수로 물든 유월의 무릎에 걸터앉아 있으니 나 역시 유월의 작은 나무 한 그루인 듯하다.
편견 없는 숲과 가까이 다가와 슬쩍 목덜미를 만지고 옷자락을 흔드는 바람의 보드라운 손길 환한 미소로 바라보는 꽃이
나도 개미나 벌처럼 이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비에 밭은 패이고 물꼬가 생겼는데, 풀밭에는 패이지 않았다. 서로 뭉치고 의지하는 잡초의 근성을 새삼 실감한다.
높고 낮아도 크고 작아도 서로서로 어우러지는 소박한 풍경을 보여주면서 유월 마지막 휴일은 내게서 지나갔다.
-2005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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