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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뜰/마음자리

by 김낙향 2017. 6. 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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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하니 어떠냐고?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아도 내 집 같을 줄 알았다오.

1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 훌쩍 떠날 곳이 있다는 감정을 거두려고 매일 풀을 뽑고 상추와 쑥갓 오이를 심었다오. 열무 씨는 뿌렸는데 왜 그리도 뻣뻣하던지.

어머니와의 관계는?

철들기 전부터 떨어져 살아 엄마 정이 늘 그리워 쉽게 귀향했는데, 딸이 돌보아드려도 지독한 남아 선호 사상과 90 세월을 살아낸 고정관념이 매우 낯설어 작년 내내 자주 충돌했다오. 친정엄마와 딸은 잘 싸운다는 속설을 증명하듯이 말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당신 생각대로 살아온 생활패턴이랄까, 어머니의 아집(我執)이 너무 힘들어 보따리를 쌀까 하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어 생각을 고쳐먹느라 마음고생했는데 지금은 가족 아닌 가족처럼 눈치로 감 잡으며 잘 지내고 있다오. 물론 어머니도 견해나 생각이 다른 나 때문에 많이 힘들 테고.

제일 힘들었던 것은 밤잠을 푹 잘 수 없었던 거야. 밤 내내 개 짖어대는 소리(짐승이 집 근처에 내려오는지), 새벽이면 수탉 고함에.

 

300평 남짓 되는 텃밭을 원시적으로 갈아엎고 고르다 보니 참으로 힘들더군. 밤새도록 몸살을 하다가 날이 밝으면 벌떡 일어나게 되는 것이 참 신기했어. 맑은 공기 때문인가 봐.

 

이제 2년째라 축대에는 씨로 심은 한련화가 알록달록 피기 시작하였고 몇 그루 아니지만, 오미자와 포도 넝쿨에 열매가 제법 맺혔고 거름을 넉넉하게 준 호박 오이도 얼마나 탐스럽게 크는지 식물이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이기는 내 생애 처음이라오. 상추에 쑥갓을 올려 쌈을 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는 얼마나 청정했는지

고추도 가지도 토마토도 토실하게 자라서 꽃 피기 시작하였지. 얼마 후 열매를 따서 먹을 생각에 잡초 뽑는 일도 재미있어지더군.

그런데 말이야, 얼마 전 우박이 쏟아져 모든 것들이 초토화됐어. 단 20분 만에 뿌리와 줄기만 남기고 다 작살을 내더군. 그냥 멍했었지. 배신당한 경험은 없지만 아마 이런 기분이었잖나 싶어.

 

매일 풀만 뽑게 되는 일상이 슬슬 자괴감이 들더군. 어떤 날은 바람도 뉘 집 축대 밑에서 해찰하고, 모든 초목이 고요하기만 한데 이 고요가 길어지니 적막이 깊어져 권태로워지더군. 시골에 살면서 느낀 건데 뭐든 간에 조금씩은 흔들려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시각적으로나 느낌이 전환되거든.

 

두어 달 전 새 식구가 생겼다네. 귀촌 기념으로 성당 자매에게 받은 수캉아지 백구가 있거든. 이 아이가 점잖아 잘 짓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자그마한 발발이 아롱이를 데려왔는데 하필 암놈이었어. 백구와 아롱이가 컸다고 둘이 몰래 사랑을 했다오. 그래서 아롱이가 수태했는데 내가 야단을 쳐서 그런지 새끼를 딱 한 마리만 낳았네. 다행이지 뭔가. 시골에는 강아지를 낳아도 누가 키우려고 하질 않아.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오. 그 새끼가 두 달 되었는데 어찌나 예쁜지. 아기 때는 다 예쁘잖아. 세 마리를 다 키울 수는 없어 누가 키워주길 바라면서 데리고 살고 있다오

 

오늘 아침 오이도 새로 심은 것보다 우박 맞은 넝쿨이 꽃을 피우더니 2개나 따 먹었다오. 고추도 가지도 곧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초토화되었던 상추와 쑥갓이 소생하여 어찌나 왕성하게 크는지 다 처치를 못 해서 닭이랑 나누어 먹는다오.

 

요즘 장마라 하지만 더위는 여전하구먼. 더위 먹지 말고 잘 지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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