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분다.
까칠한 삭풍처럼 느껴지는 찬 기운에 낙엽처럼 오그라들며 바삭거리는 몸.
첫사랑에 가슴앓이하다 가뭇해진 가슴들이 가을 시로 읽히는 풍경들,
내가 걸어왔던 낯익은 길. 처음 만나는 것들도 아닌데, 처음처럼 신선하고 맑다.
넓은 길, 좁은 길, 꼬부랑 길, 오름 길, 모퉁이 길. 삶을 닮은 길들이 정겹다.
황혼기에 든 풍경들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지.
제 몸에 붙은 식솔들을 물들이느라 까맣게 타는 염원 짙은 나목을 바라보며
태어나 한 번쯤은 화려해 보고 싶은 마음의 계절에 덩달아 벙그는 가슴으로 길을 걷는다.
언덕을 오르는 곳에서는 주먹만 한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울림이 온몸으로 퍼지고,
열꽃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릴 때 나무 한 그루처럼 서서 땀을 닦으며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가까이서 보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길의 풍경은 더 운치 있고 아름다웠다.
주근깨 빽빽하게 앉은 갈잎과 검버섯 같은 얼룩이 있는 단풍도 예쁘고, 칙칙한 것도 밝은 것도
어우러져 음양의 조화에 한몫을 한다.
깊고 낮은 숲 사이로 숨구멍처럼 보이는 하늘,
무언가 답답한 가슴에 고인 연기를 빨아낼 것 같은 투명한 굴뚝 길 같기도 하다.
'너무나 바쁘게 살아왔구나!' 하는 독백은 세월이 빠져나간 몸속 공간을 메아리처럼 맴돈다.
순간 허허로운 느낌에 잠시 서 있다가
가을에는 시를 읽다가 울어도 용서된다는 장석남 시인의 멋진 글귀를 떠올려 본다.
소슬바람이 나뭇잎 흔들며 지나간다.
노란 나뭇잎 사뿐히 허공으로 뛰어내리고, 나는 가을 찬 바람에 마음을 헹군다.
탱글한 열매, 몸속에 또 하나의 몸을 키우기 위하여 제 몸 가뭇하게 태우고 있는 나목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견뎠을 삶, 환희. 뜬금없이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직도 자식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종종 먼저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늙어가는 딸이 늙은 어미의 위로를 듣노라면,
많이 얇아진 가슴으로 늘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져 마음 가운데로 통증이 번진다.
가을이 저무는 풍경
낡아 헤진 그 자리에 바람이 숭숭 들어와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은 견뎌온 세월이 있기에
겹겹의 삶이 녹아 있기에 그 처연한 모습이 슬프지 않다.
스스로 떨어지기 전에 누가 감히 이 잎을 딸 것인가!
인간들이 버리고 간 오물 냄새 곁에도 자연은 맑은 모습으로 있다.
가을 정서에 푹 빠졌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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