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되던 해
지금까지 정신없이 살다가 예순이란 언덕에 다다라서야 가쁜 숨을 후- 쉬어본다.
긴 시간을 길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분주하게 소비하는 동안 무얼 했느냐고 묻는다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늘 어긋나는 계획에 적응하느라 딱히 내놓을 것이 없어서다.
생활비를 다 쓰고 난 후 무엇에 썼는지 뚜렷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소비했다고만 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많은 것은 진심이다.
온전하게 아이들을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도 아니고 다 같이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쉼 없이 몸을 움직였지만 크게 잘 살지도 못하였고, 어느 한쪽이라도 만족을 주지 못하였으니. 딱히 핑곗거리도 없는 말을 해야 한다면 살아내려고 애쓴 시간이 참으로 짠하고 고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가 예순 고개에 다다른 나이가 서늘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진즉부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라고 다그쳤지만 ①도 ②도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그러나 멋지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노트를 준비하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라'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것들과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적어보라'는 누군가의 글도 있다.
'못하면 왜 할 수 없는지도 적어보라'는 이 글 새롭게 변화하라는 시작을 일러주는 좋은 말인데 왜 마음이 먼저 주눅이 들었는지.
예순 살 정수리로 쏟아지는 햇살이 몸에 박힌 세월을 탐색하듯 훑는다.
슬펐다고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간 날들이 괜스레 촉촉해진다.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니 언덕에 가득 자란 망초에 꽃망울 한껏 움츠리고 바람을 견디고 있다.
흔들림은 온전하게 피우기 위해 감당해야 할 몫, 내가 피워야 할 꽃을 위해 감당해야 할 무게는 내 안에 욕구였다.
대 자연도 비바람에 닳아지고 변형되는데 그 자연에 속한 내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내 몸을 갉아 먹는다 생각하니 문득 책에서 본 글이 떠오른다
"우리는 성장할 뿐 늙지 않는다. 하지만 성장을 멈추면 비로소 늙게 된다. "는 글이.
이제부터라도 내 안에 잠재력을 발견하여 멋지게 나이 들어야겠다. 무심으로 방치했던 나를 위해서.
200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