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는 날
두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일에 골몰하다가 문득 나이 들었다는 생각에 쓸쓸해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 정신없이 살아낸 세월이 왜 나를 잃어버린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까운 산으로 가서 걸었다.
그러다가 산을 좋아하는 이웃과 등산 동아리를 만들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자 여성산악회로 발전되었다.
매주 목요일이 산에 가는 날이다.
어둑한 새벽에 배낭을 메고 나온다는 것은 산에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더구나 잠을 설치는 옆 지기의 배려가 없으면 힘들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과의 동행은 많은 엔도르핀이 생성된다.
우아한 옷차림이 아니어도, 명품 풍경이 아니어도, 소문난 뮤지컬이 없어도, 웰빙 음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애인이나 남자가 없어도 종일 재재거리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성들만의 산행. 우아한 교양도 필요 없고, 지식인처럼 전문적인 대화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부자연스러움도, 내숭 떨 일도 없다.
그냥 길가에 핀 개망초처럼 수수한 모습으로 편하게 웃고 걷는다.
둘레둘레 앉아 밥 먹다 웃어 밥풀이 튀어나와도, 대낮에 숲속에서 보름달을 띄우고 온수를 틀어도 흉스럽지 않은 모습들. 힘든 구간이 닥쳐도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믿음이 생겨 모두가 초연해진다.
오르내림이 심한 산을 체험하면서 인내를 배운다.
굴곡이 심한 우리네 삶과 같은 산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힘을 내고 적응하고 익히기를 반복하면서 내면에 기를 충전한다.
우직한 바위처럼 침묵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걷고 걷는다. 땀에 젖었다가 말랐다가 하면서.